공론장의 복원 블로그 세상에서 가능할까
다시 하버마스를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는 ‘부르주아 공론장’이 과연 블로그세상에서 복원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읽고 또 읽어도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버마스가 바라는 그 부르주아 공론장의 원형에 가깝게는 말이죠.
하버마스는 TV와 같은 미디어가 공론장을 파괴했다고 설명합니다.
“뉴미디어들이 방송하는 프로그램들은 인쇄된 전달방식과는 달리 수신인들의 반응을 독특하게 제거한다. 그것들은 공중을 시청자로서 자신의 궤도로 끌어당기는 동시에 공중으로부터 성숙의 거리, 즉 말하고 반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성숙’이라는 개념은 문화적 교양과 연결됩니다. 17~18세기 부르주아 문예 공론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예적 토론(살롱이나 카페 등에서 이뤄졌던)이 TV를 통해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만약 TV 방영물이 책 토론, 교양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면 하버마스의 생각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상업화된 언론, 공론장을 파괴하다
하지만 기성 신문과 TV 매체는 외면했습니다. 자본주의 언론의 한계 때문이지요. 객관적 저널리즘이라는 메인스트림 그리고 AP가 개발한 역피라미드 기사의 역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19세기 이후 언론은 상업적 이윤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도 매우 비판적입니다.
“편집자의 입장 표명은 통신사 보도와 특파원 보고의 뒤로 후퇴한다. 비판적 논의는 소재의 선택과 제시에 관한 내적 결정의 장막 뒤로 사라진다. 이로써 정치기사나 정치와 관련된 기사의 비율이 변화한다.
공공사안, 사회문제, 경제문제, 교육, 보건, 즉 미국 저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바로 보상지연 뉴스(delayed reward news)는 풍자, 부패, 사고, 재해,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사회적 사건, 인간적 흥미와 같은 즉각적 보상뉴스(immediate reward news)에 의해 밀려날 뿐만 아니라 이미 이러한 특징적 지칭에서 드러나듯이 실제로 적고 드물게 읽힌다.”
공중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고 계몽하는데 몰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문화의 소비자로 전락시킴으로써 공론장이 파괴됐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결론입니다. 저널리즘이 그에 한 몫을 담당했고요.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지식인, 교양인과 같은 엘리트에 호소를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대중문화에 젖어 문화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대중들을 위해 격조 높은 독서토론을 이끌어달라고 외치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독서토론이 대중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애써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대중문화 소비자로 전락한 공중, 블로거는 다를까?
하버마스의 요청을 블로그 세상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요? 아직은 어렵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대다수의 블로거는 토론할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토론의 기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MB가 싫다는 목소리를 넘쳐나지만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져가며 MB 정책의 모순을 짚어내는 블로거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MB 측의 정교한 논박에 금방이라도 사르르 무너져내릴 듯 사상누각과 같은 글들을 넘쳐납니다.
하버마스가 바라는 공론장은 이런 것입니다.
“18세기에 부르주아 독서공중은 친밀한 서신왕래 및 여기서 발전된 심리소설과 단편소설 문학에 대한 독서를 통해 문학능력을 갖춘 공중과 관계된 주체성을 배양할 수 있었다.“
정치적 공론장의 전 단계인 문예적 공론장이 갖춰지려면 최소한 이와 같은 학습과 문화적 교양의 배양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연 블로그 세상은 이러한 학습장의 기능을 하고 있을까요? 오프라인 불만족의 배설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공론장 복원을 위한 블로그 세상의 조건은?
어쩌면 하버마스는 블로그 세상의 가능성을 확인받으려면 허동현-박노자 서신논쟁급의 토론이 블로그 세상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블로그의 증가가 도서 판매량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상관관계가 또렷해져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와 함께 대중의 교양수준도 함께 증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야 한다고 덧붙일지도 모릅니다.
블로그 세상에서 격조 높은 토론이 이뤄지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지식인들이 더 많이 블로그 세상으로 옮겨와야 가능할까요? 아니면 일반 블로그들의 지적 교양의 수준이 높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까요? 같이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p.s.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대중의 지혜’가 어디에 어떻게 위치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하버마스는 대중의 지혜를 신뢰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 문득 레닌이 노동자집단은 무지하고 이기적인 존재라고 한 말이 떠오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