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현 의원 폭로와 WP의 펙트체커 시스템

폭로는 순기능이 많다. 현상 이면에 숨겨진 부정과 부조리를 드러내 실체를 드러내고 이를 보정한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감시의 눈을 확산시킨다. 정상적인 상태로의 귀환을 추동한다. 약자의 억울함을 증명해낸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보라. 정치권의 추악한 허울들을 모조리 드러남으로써, 정치적 정의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를 만들었다. 저널리즘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다줬다. 시민들에 의한 감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하지만 역기능도 있다. 사실 관계가 정확하지 않으면 역풍을 맞기 쉽다. 치명적인 명예훼손도 가능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다. 일파만파 번질 경우 훼손된 신뢰는 좀체 회복하기 힘들다. 2차, 3차로 피해의 범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팩트를 챙기고 또 챙겨야 하는 이유다. 폭로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민주당이 역풍을 맞고 있다. 이석현 의원의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폭로 때문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아들의 부정입학 사실을 폭로했다가 이미 사과는 했지만 잠재워지지 않고 있다.

왜 정치인은 폭로를 하는가

한국 정치인은 말로 먹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오럴 정치’가 보편화돼있다. 재선, 삼선을 위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언론에 언급되는 횟수가 높아야 한다는 강박에 쌓여있는 분들도 있다. 폭로의 유혹에, 고강도 ‘오럴 정치’의 유혹에 빠지는 배경이다.

우스개소리로 이런 얘기도 한다.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신문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못한 의원이 몇 명인가?’ 찾아보라. 의외로 많다. 지금 당장 당신이 기억하는 국회의원 이름 10명만 대보라. 가능한가?

언론에 노출되지 못하는 건 정치적 죄악이며 정치적 무능으로 통한다. 부정적인 입소문조차도 그들에겐 축복이다. 적어도 차기 선거에서 인지도만큼은 높게 나타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폭로는 정치인의 생존 문제다. 한 건 크게 터뜨리면 시민들에게 오래 각인된다. 일약 스타로 떠오르고 영웅 칭호도 듣는다. 들은 내용이긴 하지만 폭로 거리를 당 내부에선 배분하기까지 한다.

정치인의 폭로는 언론을 항상 염두에 둔다. 보도를 전제로 폭로한다. 그간 한국 언론의 행태를 보면, 정치인의 폭로를 검증하는 경우는 빈도는 높지 않았다. 일단 받아쓰고 본다. 사실에 대한 검증보다는 폭로에 대한 주장-반박을 대결구도로 게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빈틈에 진실 규명은 늘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사실 검증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에 민첩하게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정치인도 이러한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다. 일단 속된 말로 ‘섹시’한 폭로를 터뜨리면 신문, 포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게 되고, 언론과 시민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시민들은 잘못된 정보가 포함된 정치인의 폭로를 보도했으니 그걸 보도한 언론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언론은 몸을 뺀다. 누가 “~”라고 주장했다고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사의 주장이 아니라 정치인의 발언을 받아썼을 뿐이다”라고 해명하고 그친다. 그의 견해이지 언론사의 견해가 아니라는 의미다. 언론 입장에선 밑지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워싱턴포스트, 팩트 체커 부활시키고 피노키오 테스트 적용

이쯤에서 워싱턴포스트를 들여다보자. 워싱턴포스트가 얼마전 팩트 체커 칼럼을 다시 부활시켰다. ‘Fact Checker’ 말 그대로 사실을 확인하는 에디터다. 지난 2008년 대선 당시 Michael Dobbs 가 맡았던 이 코너를 Glenn Kessler가 이어받았다.

이 코너는 정치인들과 정부 인사들의 발언이 팩트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들의 견해나 관점은 검증 대상이다. 견해나 관점을 위해 동원된 팩트를 확인한다.

5가지 원칙도 제시했다.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좌든 우든 관계 없이 발언에 포함된 팩트를 검증해내겠다는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 This is a fact-checking operation, not an opinion-checking operation. We are interested only in verifiable facts, though on occasion we may examine the roots of political rhetoric.
  • We will focus our attention and resources on the issues that are most important to voters. We cannot nitpick every detail of every speech.
  • We will stick to the facts of the issue under examination and are unmoved by ad hominem attacks. The identity or political ties of the person or organization making a charge is irrelevant: all that matters is whether their facts are accurate or inaccurate.
  • We will adopt a “reasonable man” standard for reaching conclusions. We do not demand 100 percent proof.
  • We will strive to be dispassionate and non-partisan, drawing attention to inaccurate statements on both left and right.

거짓말쟁이 정치인에겐 ‘피노키오 배지’

운영 방식도 흥미롭다. 팩트의 왜곡이나 사실이 아닌 내용이 발언에 포함된 정치인과 정부 인사에게 ‘피노키오 배지’를 부여한다. 그들 표현대로 ‘피노키오 테스트’를 진행한다. 발언에 팩트의 왜곡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피노키오가 늘어난다. 4~5개 피노키오 배지가 붙은 정치인의 발언은 신뢰하지 말라는 의도다.

‘피노키오 정치인’이라는 불명예스런 낙인이 붙으면 다음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언론에 의한 견제가 정치인들을 긴장시키고 신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오럴 정치’ 장사해보겠다는 의지를 꺾어놓는다. 좋은 언론이 좋은 정치를 만드는 과정이다.

유능한 진보는 유능한 견제 언론을 필요로 한다

이석현 의원은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 사찰의 몸통’이라는 폭로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엔 윤리지원관실의 권중기 경정과 원충연 사무관의 수첩에 적혀 있는 메모 내용을 공개했다. 적어도 납득할 만한 ‘근거자료’를 제시했다. 100%는 아니지만 설득력이 높은 팩트를 제기함으로써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려 했다. 이를 기점으로 민간인 사찰 이슈는 더욱 커져갔고,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얼마전 사퇴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번엔 어떤가? “믿을 만한 제보자”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제시된 바가 없다.

이쯤에서 언론의 역할론을 거론하고자 한다. 좌든 우든 검증되지 않은 사실에 기반한 폭로 정치는 독자와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 단계에선 거짓말 폭로마저 진실로 믿게 되는 부작용이 상당했다.

만약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가 없었다면 조국 교수의 반박이 ‘민주당의 역풍’을 불러올 만큼 강력할 수 있었을까? 모두가 시민기자이고 모두가 미디어를 가진 소셜미디어의 세계로 진입했기에 감시의 눈도 많아졌고 검증의 폭도 깊어졌으며 발언의 영향력 또한 확대된 것이다. 다시 기성 언론의 재증폭 과정을 거치면서 조 교수의 한마디는 거대한 사회적 반향을 불어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성 언론은 뭘했을까? 특히 실시간 보도가 가능한 온라인 언론은 뭘했을까? 팩트의 검증보다 발언을 받아쓰기에 바빴을 것이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특히나 진보 언론에 제대로 ‘찍힌’ 안상수 대표는 최고의 먹잇감이었기에 ‘옳거니’ 달려들었을 게다. 여기까지는 좋다. 일단 보도가 우선이기에 그의 발언을 받아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 과정이다.

만약 조국 교수가 트위터로 팩트를 알리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기사가 양산됐을까? 서울대 입학처 등에 전화를 돌려서 반박 멘트를 얻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곧바로 안상수 대표실로 전화에 입장을 요청하고, ‘안상수 아들 부정입학 여야 진실공방’ 이같은 ‘주장’의 대결 구도로 몰아갔을 개연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진실 검증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무책임하다.(사실 보수 언론은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다.)

진보언론이 팩트 체커를 두었다면…

유능한 진보/개혁을 탄생시키려면 유능한 견제세력이 필요하다. ‘진영의 함정’ ‘내편 감싸기의 미덕’은 유능한 진보를 발목잡는 ‘주적’이다. 유능한 견제세력에 진보언론은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만약 진보언론이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팩트 체커’ 시스템을 두고 좌우 정치인 발언의 ‘팩트’를 검증하는 기능을 꾸준히 해왔다면 어땠을까? 폭로에 익숙한 좌우 정치인들의 발언을 하나하나 뜯어모아 팩트를 검증해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저널리즘 행위를 해왔다면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 정치인들의 발언을 토대로 ‘양치기 소년 지수’라도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좌우 구분하지 않고 ‘양치기 소년 지수’가 높은 정치인을 과감하게 비판했다면 어떠했을까?

일부 민주당 지지자는 조국 교수의 반박을 ‘이적행위’라고까지 헐뜯고 있다. 그들의 인식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진영 내부의 미래를 위해 허물은 덮고 외부에 알리지 말자는 얘기다. 보수 언론의 힐난으로 진영에 대한 외부의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될 것을 우려해서다.

진보 내부의 반성이 더디고 지지세력의 이반이 지속되는 연유다. ‘내가 잘못 해도 우리 편이니깐 그래도 감싸주겠지’라는 기대를 키워 무책임한 정치 행태를 연발케하는 배경이다. 유능하다는 착각을 불러온 원인이다.

유능한 견제세력이 유능한 정치세력을 양산한다. 이를 위해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저널리스트들이라면 진영 내 주장엔 동조할지언정 잘못된 팩트를 관용해서는 안된다. 범인이 아니라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자국의 피해를 감안하면서까지, 진영 내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위키리크스의 폭로 문건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알다시피 뉴욕타임스를 간첩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게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은 당사자는 진영 내인 민주당이었다.) 저널리스트가 진정 분노해야 할 것은 진실의 외면이요 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