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언론사 공존 해법은 대등해지는 것

블로터포럼 언론 생태계와 네이버, 상생 방법은?

중요한 논의를 적절한 시점에 진행했네요. 답이 뚜렷하진 않더라도 대화는 더욱 깊게 치밀하게 전개돼야 한다고 봅니다.

내용에 한 가지 이견을 보론 차원에서 덧붙이면 이렇습니다.

예전 허버트 갠즈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자들은 뉴스가 독자들을 얼마나 교양있는 시민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라고.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교양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직접 그 정보를 원하고 이용해서 정보 습득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민주주의 의사결정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라고요. 저는 이 지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건 기자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력이 없어서라고 보는 편이고요.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생산하는 비중을 저는 더 확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전히 일선 기자들은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제작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연성적이고 가벼운 것이다라는 편견에 여전히 묶여있다고 봅니다. 에즈라 클라인이 이렇게 말했죠. “미디어는 밀레니얼이 무엇에 관심 갖고 있는지 잘못 알고 있다”라고. 일단 밀레니얼에 한정되긴 하지만, 그들을 단일한 그룹으로 보고 원하는 것은 “이것이더라” 추정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죠. 롱폼 팟캐스트가 성공을 거둔 것을 근거로 “독자들은 더 깊은 것을 원하더라”라고 답했죠.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예단해선 안되며, 특히나 그것이 저널리즘의 목적과 멀리 떨어진 무엇이라고 상정하는 건 이 문제의 해법을 도출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존의 해법은 각자가 자기몫을 하는 것이고, 이 지점에서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대등한 파트너 관계로 재정립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 저널리즘 진영이 먼저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언론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언론의 신뢰도는 플랫폼탓을 하며 뒤로 미룰 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에서 비로소 플랫폼 독점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설득력을 얻게 되고, 제도적 개입의 필요성이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담을 보면서 든 생각을 두서 없이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