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와 디애슬래틱의 디지털 구독 결합상품이 한국 시장에 던지는 함의

Axios에서도 보도를 했다시피, 블룸버그와 디애슬래틱이 디지털 구독 번들 상품을 내놨습니다. 블룸버그는 2018년부터, 디애슬래틱은 2016년 창간 때부터 구독모델을 운영해왔습니다. 한쪽은 비즈니스 미디어, 다른 한쪽은 스포츠 전문 미디어로 서로 카테고리도 겹치지 않습니다.

이 두 디지털 구독 미디어가 번들 상품을 8월부터 내놓았습니다. 상품의 구성부터 볼까요?

  • 블룸버그 월 1.99달러 구독 시 3개월 간 디애슬래틱 무료 이용
  • 블룸버그 연 290달러 구독 시 6개월 간 디애슬래틱 무료 이용

블룸버그의 디지털 구독 상품의 원래 가격은 제법 비싼 편입니다. 월 디지털 구독은 34.99달러, 연 디지털 구독은 415달러입니다. 사실 할인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할인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저널리즘으로 정평이 난 디애슬래틱까지 받아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1번 상품은 3개월 이후부터는 34.99달러로 되돌아 가고요, 2번 상품은 1년 이후에 415달러로 되돌아 갑니다. 말 그대로 프로모션용 할인 상품이라는 의미입니다. 블룸버그로서는 할인 상품의 가치와 매력을 더하기 위해서 디애슬래틱을 끌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리텐션 관리는 그들의 몫인 거죠. 일단 끌어당기는데는 어떤 식으로는 성공해보겠다는 의도입니다.

디애슬래틱이 얻는 게 뭘까

디애슬래틱은 국내에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스포츠 기자라면 익숙한 브랜드이긴 할 겁니다. 이 협상에 응한 것을 보고 디애슬래틱에 작은 언론사라고 보시면 오산입니다. 올초 디애슬래틱은 5000만 달러의 시리즈 D 투자를 받으면서 밸류에이션을 약 5억 달러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6000억원 가치입니다. 유니콘급은 아니더라도 중견급 스포츠 전문 언론사임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 전제에서 디애슬래틱의 번들 참여 전략을 들여다 봐야 의미가 읽힐 겁니다.

사실 위 상품만 보면 디애슬래틱이 얻는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디애슬래틱의 디지털 구독 상품 가격을 볼까요?

  • 월 9.99달러
  • 연 59.88달러(월 단위로 보면 4.99달러)

블룸버그의 프로모션 상품 가격은 디애슬래틱이 밑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둘 간의 계약서에 블룸버그가 디애슬래틱에 라이선스를 지급하는 기타 비용이 포함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블룸버그가 그런 무리수를 뒀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디애슬래틱이 이 협상에 응한 이유가 뭘까요? 저의 추측을 여기에 정리해보겠습니다. 결합상품 전략의 일반론이긴 합니다.

Top Of Funnel의 리치 확보 : 이게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디애슬래틱의 잠재적 독자들은 블룸버그 독자와 겹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자사 잠재적 구독자들의 일반적인 성향들을 분석해보면 대략적으로 블룸버그를 구독할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면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은 고소득 전문직들이 스포츠 뉴스를 즐긴다고 본 듯합니다. 이럴 경우 디애슬래틱은 블룸버그 독자를 끌어당겨오는 기회를 얻게 되는 거죠.

심지어 블룸버그는 QuickTake라는 영상 전문 버티컬에 디애슬래틱의 스포츠 기술, 스포츠 비즈니스, 스포츠 문화 콘텐츠를 노출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디애슬래틱으로 유입될 수 있는 잠재적 독자의 퍼널 입구를 넓혀준 것입니다. ‘기회를 줄 테니 마음대로 우리(블룸버그) 독자를 데려가봐, 전환시켜봐’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블룸버그 입장에선 디애슬래틱의 전략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즉 두 미디어의 독자는 배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거죠. 쉽게 말해 종합일간지에 스포츠지 끼워준다고, 종합일간지 독자가 일간지를 끊고 스포츠지로 넘어가는 경우는 아주 소수에 그친다는 가설인 겁니다. 둘 사이의 파트너십이 가능한 건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언론사들에 주는 메시지

미국의 디지털 구독 시장은 아주 경쟁적인 구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미 상위 언론사들이 상당수의 유료 독자를 과점해버린 상태입니다. 후발 주자들이 독자들의 한정된 예산을 빼앗아 자사 구독으로 넘겨받기란 이젠 쉽지 않은 국면으로 들어선 거죠. 'Winner takes All'까지는 아니어도 선두 주자의 기득권이 인정되는 시장 영역입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디지털 구독을 주도하고 휩쓸 만한 사업자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죠. 만약 어떤 사업자가 초반부터 특정 독자층을 선점해갈 경우 후발 주자가 빼앗기란 쉽지 않아집니다. 이럴 때 이러한 ‘번들 전략’들을 구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이들은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독자 입장에서 두 매체는 배타적이지 않아야 할 것, 확보하고자 하는 잠재 독자층이 만족스러워 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찾을 수 있어야 할 것 등의 조건이 붙긴 할 겁니다.

사실 신문의 시대에, 종합일간지들은 자매지를 끼워 팔며 결합상품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이후 제재 등으로 인해 활성화되지는 못했죠. 주로 자사 자매지였다는 점에서 위 사례와는 약간 다른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주가 되고 어느 쪽이 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결합 상품의 등장은 어쩌면 국내에서도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쪽 나라들은 이미 구독 시장이 저만치 가고 있네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들이 소개되고 있고요. 당분간 국내 뉴스 / 정보 시장은 광고 의존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죠? 전 그럼에도 디지털 구독으로 넘어가는 흐름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강조하지만 광고는 더이상 언론사가 가져오기엔 작은 시장이 되고 있다는 것. 대부분의 결국 대형 IT 기업들이 먹고 난 떡고물 정도를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것. 이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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