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R 번역] 팩트의 흥망성쇠 : 팩트체킹의 가치와 의미

팩트 그 자체는 진실을 향해 그걸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러나 믿음이나 의견과는 달리 팩트는 계량화할 수 있다. 그래서 동의를 얻을 수 있다. 팩트는 공동 자산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들을 좋아하는 거다

[CJR 번역] 팩트의 흥망성쇠 : 팩트체킹의 가치와 의미

아래 글은 CJR의 최근 글 The Rise and Fall of Facts를 번역한 것입니다. 물론 저자인 Colin Dickey의 허락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팩트체킹의 발생과 전개 과정을 복기하고 이해하기 위해 임의로 제가 번역해 소개한 것입니다. CJR 측의 요청이 오면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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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팩트체킹에 대해 쓴 하퍼스 매거진의 기사 “러시아에는 00 나무가 있다”는 기사에서, 오토 프리드리히는 이집트 대통령 ‘모하마드 나지브’로 확인된 바 있는 익명의 잡지 통신원의 스토리를 관련 글로 제시했다. 관행대로 그는 “zips”(나중에 채워질 사실들이라는 의미)을 남겨두고 기사를 작성했다. 그 zip에는 나지브에 대해 “그의 이름은 ”Who’s Who in the Middle East”에 등록된 000명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라고 썼고 “00피트 높이의 성벽”에 둘러싸인 왕궁에 살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점을 주목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편집자는 zips를 채우기 위해 그 기사를 카이로에 있는 팩트체커에게 보냈다. 어떤 대답도 오지 않았고, 마감일이 다가오자 편집자는 화가 나서 팩트가 필요하지 않는 형태로 그 스토리를 다시 썼다. 일주일 후, 이 잡지는 팩트체커로부터 다음과 같은 전보(telegram)를 받았다.

“나는 감옥에 갇혀 있어요. Farouks 궁전 밖에서 15피트 높이의 벽의 높이를 측정하다가 체포된 이후 단 한 개의 전보만 보낼 수 있었어요. 그 중동에 있는 사람들 중 38,522명의 이름을 세는 것을 이제 막 끝냈습니다.”

프리드리히의 일화는 팩트체킹의 위대한 진실을 잘 드러낸다: 팩트는 작가, 독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편집자들에게는 신성한 것이지만, 때로는 실제 가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작업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었다. 팩트체킹의 중요성은 – 특히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과 관련해서- 여러분이 사소한 것들조차도 꼼꼼하게(fastidious) 다루면, 독자들이 큰 것들에 대해 여러분을 믿을 것이라는 오랜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팩트체킹의 역사는 증명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의 누적이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초기의 신문 인쇄업자들은 객관성보다 의견과 격론(polemic)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팩트에 대한 프리미엄은 거의 없었다 – 독자들은 그런 뉴스를 원했지만, 그들은 의견 등도 비슷하게 바랐다. 이것은 공간 자체가 소중해진 와이어 서비스의 출현과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1854년, AP통신의 대표인 다니엘 H. 크레이그는 그의 에이전트들에게 가능한 한 적은 단어로 “어떤 문제나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들”에 대한 요청을 상세히 적은 회람을 보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모든 의견의 표현, 모든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편견, 특히 ‘더 리포터’ 쪽의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모든 개인적인 감정은 그의 긴급보도(디스패치)에 끼어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와이어’의 리포트는 의견이나 특정 지역의 관용어에 낭비되는 허황된 말투를 쓸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뉴스 가치가 있는 내용만을 최소한으로 증류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비즈니스에 이로웠다: AP통신은 그 내용을 지역 신문들이 자신들의 의견으로 만들고 회전할 수 있는 원료로 포장했다.팩트는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속도를 높였다. 1912년 미국 컬럼비아대 연설에서 뉴욕월드의 발행인인 랄프 퓰리처가 설명했듯이, 이것은 “정직한 부정확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양날의 검이었다. 곧이어, 뉴욕월드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특파원, 작가, 편집자, 배치 편집자 등의 시스템에서 오류의 수를 줄이기 위해 ‘정확성과 페어플레이 사무국’(Bureau of Accuracy and Fair Play)을 설립했다. 이 조직의 작업 대부분은 소급적인 것들이어서(retroactive)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팩트체크 자료보다는 고의적인 조작을 잡아내고 사과문을 인쇄하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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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브리튼 해든과 헨리 루스는 팩트의 역할과 목적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의 초창기 출판물(타임 매거진)은 다른 언론사의 작업물을 모아 한입 크기의 리포트와 논평으로 편집했다. 인쇄된 단어 하나하나가 객관적으로 검증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그들은 또 하나의 주요한 혁신, 즉 연구부서, 또는 지금 우리가 ‘팩트체크’라고 부르는 것을 추가했다.(그 잡지의 작업 명칭은 팩트였다). 편집자 존 쇼 빌링스는 1933년 “우리는 메리 여왕이 지난 목요일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물어보고 20분 안에 답을 얻을 수 있다”고 기뻐했다.아주 사소한 세부 사항이라도 뒤쫓아 파헤치는 이 방법에 대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경영 컨설턴트인 Peter Drucker의 프로필(기사) 작업을 해왔던 타임의 한 팩트체커는 그가 어떤 류의 개를 키우고 있느냐고 물었고, Drucker는 그의 노망하고 반맹이며 절름발이 비글을 단순히 “사냥개”라고 묘사했는데, 이것은 체커가 그녀의 노트에 그렇게 입력해 놓은 것이었다. 그 프로필 작가는 “사냥개”를 “맹렬한 독일 셰퍼드”로 바꾸었고, 그로 인해 Drucker는 타임의 팩트체킹 시스템이 “작가는 팩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리서처는 그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타임의 리서치 프로세스는 미국 잡지의 규준을 정초했다. 그러나 뉴요커만큼 엄격한 팩트체킹으로 일관하는 출판물은 없었다. 오류로 고통받았던 1927년 에드나 빈센트 밀라이 경 어머니가 이 잡지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으로 위협한 사건 이후 인정사정 없을 정도의 팩트체킹을 시작했다. 뉴요커의 팩트에 대한 집착은 곧 그 자체로서 훌륭했다. 그 잡지는 전화번호부와 참고서, 복사본, 서류 정리 시스템으로 구성된 팩트체크 제국을 구축했다.팩트체킹은 처음에는 여성의 직무로 인식되었고, 1970년대까지 그런 인식이 남아있었다. 1971년 책 “경험은 필요 없다: 여성 문과 대학원을 위한 취업 안내서”는, 팩트체킹을 젊은 여성들이 가능한 많은 직업 중 하나로 기재했고, “일이 많고, 연구 스킬과 판단력이 수반되는 소름끼치는(grisly) 일”이라고 기술했으며, “자기 자신을 주제전문가로 생각하는 편집자들로부터 엄청난 불쾌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퍼스의 프리드리히는 이 전형적인 팩트체커를 “평소 동부 대학 출신의 20대 여성으로 유쾌한 외모를 갖췄지만 팜므파탈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일에도 부적격인 대학 출신이지만 흥미로운 직업을 찾고 있었다. 몇 년 후, 그녀는 씁쓸하지만 당연하게, 아무도 그녀의 작업에 감사해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라고 기술했다. 타임에 고용된 최초의 팩트체커인 낸시 포드는 긴장감과 피로를 견디지 못한 듯 불과 몇 달 만에 그 잡지를 떠났다.작가들이 팩트체커에 맞붙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말은 곧 난공불락’인 그들 혼자만의 천재적 생각을 체크하려는 데 대해 작가들이 분개했기 때문이었다. 뉴저널리즘 시대에, 뉴요커의 팩트체킹 부서는 톰 울프 같은 인물들의 비판의 대상이 됐다. 톰 울프는 그 안에서 집단사고의 형태를 봤고, 그것을 대문호들의 산문을 바가지긁고(henpeck) 무력화하기 위해 여성들과 중간 편집자들 모두가 협력해서 벌이는 작당(cabal)이라고 여겼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한 이래로, 갑자기 성장한(upstart) 출판물과 위엄 있는(august) 출판물 모두 온라인 스토리에 대해서는 팩트체킹을 대부분 포기했다. 인쇄물과 달리, 디지털 콘텐츠는 결코 완전하게 새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웹사이트들은 출판 전 점검 대신에 필요한 사후 수정 사항을 이슈화하면서 뉴욕월드의 ‘정확성과 페어플레이 국’의 에토스로 되돌아왔다.팩트체크는 근래 들어 주로 레거시 인쇄언론사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은 합법성과 진지함의 결을 유지한다. 사실 확인은 독자들, 작가들, 편집자들에게, 비록 그 주의가 어느 정도, 여전히 피상적인 것일지라도,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완벽하게 팩트체킹된 글은, 결과적으로 여전히 그 가정이나 결론이 근본적으로 틀릴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팩트 그 자체는 진실을 향해 그걸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러나 믿음이나 의견과는 달리 팩트는 계량화할 수 있다. 그래서 동의를 얻을 수 있다. 팩트는 공동 자산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들을 좋아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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