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가 주목해야 할 신뢰라는 희소 가치

언론사가 주목해야 할 신뢰라는 희소 가치

정보 과부하(overload)는 미디어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정보 자체가 희소 가치를 지니던 시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차적 희소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언제까지나 그것이 희소적 재화로 남아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보 과부화는 미디어의 생존 질서를 뒤바꾼 혁명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보 과부하는 생산자 중심 정보 생산 모델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한다. 수용자가 받아들이지 않는 정보는 그저 웹이라는 공간을 부유만 할 뿐이며, 소비되지 않은 채 아니, 발견되지 않는 채 검색 결과의 후순위로 밀려난다. 정보 수용자들에게 주입하려는 의도는 이 과정에서 배척되거나 구축된다.

정보 과부하라는 제약 조건에서 그나마 생산자 중심 모델이 존속되려면, 서비스의 희소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동일한 정보라도 수용자들에게 전달하는 서비스 방식이 희소적이라면 해당 정보는 발견되고 소비될 확률이 높아진다. 맞춤형 소비를 유인하는 다양한 서비스 모델이 각광을 받는 배경도 이와 관련이 깊다. 수용자의 기호와 선호를 반영해 전달 방식(서비스)의 희소 가치를 극대화하면 생존의 기회를 만날 수 있다. 알고리즘으로 처리하는 배열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보 과부하 환경에서 생산자 중신 모델이 존속될 수 있을까

image 출처 : https://www.socialcapitalresearch.com/literature/contemporary-authors/

서비스 희소 가치도 어디까지나 제한적으로만 작동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용자들의 지속적인 관심(Attention)을 얻고 재방문을 확보하려면 가장 근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신뢰의 문제다. 생산된 정보가 충분히 미덥지 않으면 어떤 기술의 조작적 서비스 모델을 시도한다더라도 반복적인 수용자를 확보하기 어렵다. 수용자는 정보 과부화 환경 속에서 언제든 이탈할 준비가 돼 있으며, 조금의 불만족을 경험하게 되면 가차없이 대안을 찾아 떠나버린다.

신뢰는 사회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대 연구가 돼왔다. 부르디외, 콜만, 퍼트남 등 각자 다른 토양 위에서 사회 자본의 개념과 정의를 도출했지만 여기선 퍼트남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닌 가치를 어떻게 미디어가 실현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려 한다.

퍼트남은 사회자본을 “조정과 협력을 촉진하는 네트워크, 호혜적 규범, 사회적 신뢰 등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정의한 바 있다. 퍼트남의 정의에서 협력적 네트워크, 호혜의 규범, 사회적 신뢰가 사회자본의 핵심구성요소이다. 이 구성 요소들은 서로 시너지를 내며 상승효과를 가져온다(남궁근, 2007, p.301). 이를 테면, 시민관여의 수평적 네트워크가 호혜의 규범과 신뢰의 형성을 가져다주며, 또한 그것이 협력과 의사소통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세 가지 요소는 그래서 떨어뜨려놓고 상상해서는 안된다.

미디어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도 여기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신뢰는 수평적 네트워크에서 비롯된 시민의 관여와 참여 속에서 형성되고 긍정적 평판으로 안착된다. 그리고 함께 협력하며 조정되는 과정을 거칠 수 있게 된다. 즉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미디어 관점에서는 수용자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숙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들과 동등하고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갈 때에만 얻어질 수 있는 축적의 결과값이다. 이는 뉴스나 정보 생산자들이 수용자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만 비로소 접근할 수 있는 지난한 관계적 산물이라는 의미다.

정보의 희소가치는 누적과 축적의 대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생산이 곧 희소 가치의 발단이던 시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제한적인 정보 접근성으로 희소 가치를 만들어내던 시대에도 정보 생산은 누적과 축적의 성격을 갖지는 않았다. 물론 정보 접근권을 얻기 위한 시간이 누적적인 성격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신뢰라는 자본이 만들어지는데 비교하면 누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만큼 신뢰를 단 한 번의 시도로, 단기적인 노력으로 획득될 수 없는 자산이다.

신뢰가 희소한 시대에 접어 들면서, 뉴스 생산자의 수익모델도 큰 폭의 변화를 겪고 있다. 구독 모델이 그것이다. 구독 경제의 실험과 확대는 신뢰라는 사회 자본의 바탕 위에서만 작동한다. 신뢰는 긍정적 관계의 축적을 통해서 만들어낼 수 있기에, 여타 수익모델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일시적 주목(attention)의 포획을 목표로 삼는 광고 모델과는 더더욱 차이가 두드러진다. 광고라는 수익 중심성에서 구독이라는 수익 중심성으로 전환하는 데엔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모델이다.

신뢰라는 사회 자본의 특성상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신뢰를 구축해온 기성 미디어는 상대적 우위의 지위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사들 가운데 이런 상대적 우위의 위상을 쉽게 확보한 사례는 그리 흔하지 않다. 포털 종속성이 초래한 ‘신뢰의 헌납’을 그들이 수년간 받아들여왔기에 전환 비용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구독 경제가 국내에서 기성 미디어 흔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기성 미디어는 신뢰라는 사회 자본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지만

뉴스 스타트업은 이런 허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구독 시스템을 실험하고 구축하고 확장하기 유리한 위치를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도전하고 선점하면서 수용자와의 긍정적 관계를 또다른 수익모델로 넓혀가야 한다. 비즈니스 혁신의 토대는 수용자와의 신뢰 속에서만 구성될 수 있는 특별한 시기로 접어들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기성 미디어의 회복력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기성 미디어들마다 편차는 존재하지만, 일부 언론사들의 회복력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있다.

신뢰는 비즈니스의 유연확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 자본이 확보한 행위자와 그렇지 않은 행위자 간의 경쟁은 중장기 수준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수용자의 이탈을 지연시키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사회 자본의 탄탄한 구축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희소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신뢰다. 어떤 주체가 더 높은 수준의 신뢰라는 사회 자본을 확보하느냐가 미디어의 지속가능 여부를 가르게 될 것이다. 다만, 정보 자체의 층위, 서비스적 층위, 비즈니스 층위 등 정보 생산, 유통, 소비 모든 층위에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참고문헌

  • 남궁근. (2007). 사회자본의 형성과 효과에 관한 경험적 연구의 쟁점. 정부학연구, 13(4), 297-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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