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 저널리즘 논쟁] 톰 로젠스틸과 제이 로젠의 견해차

[객관 저널리즘 논쟁] 톰 로젠스틸과 제이 로젠의 견해차

퓰리처상 수상자인 웨슬리 로어리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저널리즘 객관성에 숨어 있던 권력의 힘과 방향을 말이죠. 우리는 그것을 저널리즘의 제1원칙으로 삼아 보도의 틀을 구성해왔습니다. 그것의 역사와 무관하게 한국의 저널리즘은 균형과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저널리즘 객관성을 규율화했죠.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근본조차 확인되지 않는 관행을 우리는 객관주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왔습니다.
웨슬리로부터 촉발된 저널리즘 객관성, 객관 저널리즘 논쟁은 미국 저널리즘이 그래도 본질과 근본에서 멀어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를 확인시키주는 건강한 토론장이었습니다. 특히 '저널리즘의 원칙'으로도 잘 알려진 톰 로젠스틸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장문의 견해를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수많은 언론학자들, 기자들이 함께 토론에 뛰어들었습니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풍경입니다.
저널리즘의 본질과 역할, 진실에 이르는 방법론에 대한 근원적 토론은 한국 저널리즘 내에선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그릇된 저널리즘에 대한 관념과 개념, 특히 오염된 객관성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그릇된 보도 관행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죠. 우리가 그만큼 저널리즘 이해에 취약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합니다.
이걸 번역해 소개하는 건, 우리 또한 저널리즘 토론에 조금더 적극적이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입니다.(번역문 초안) 근본 없는 보도 관행을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오고 있는 그간의 행태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제 생각은 추후에 다시 정리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이 논쟁과 관련해 추가되는 견해가 발견되면 이 포스트에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뉴욕커의 기사 'How Can the Press Best Serve a Democratic Society?' 일부 요약 번역

당시 허친슨의 3가지 질문

* 1)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무엇인가
* 2)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 3)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론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세계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상호 연결되고 있던 20세기 중반, 위원회는 언론에 대한 사회의 요구조건이 "어느 시대 어느 이전 사회의 요구 조건보다 다양하고, 양적/질적으로 더 커졌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 필수요건을 확인했습니다:

* 첫째, 그 날의 사건들에 대한 진실하고 포괄적이며 지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 둘째, 사회의 모든 중요한 관점과 관심에 대한 토론의 장을 제공한다 
* 셋째, 사회와 그 다양한 집단을 대변하는 상을 제공한다, 
* 넷째, 공동체가 경주해야 할 이상에 대한 대중적 교육을 제공한다
* 다섯째, 모든 사람이 정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 트럼프 시대의 급진성과 포퓰리즘이 저널리즘의 이상으로서 객관성에 대한 재검토를 끄집어냈다.

  •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은 리프만의 ’저널리즘적 객관성‘ 개념을 직접 참고하지는 않았지만, 허친슨 위원회 멤버들도 동일한 개념으로 씨름하고 있었다. 특히 의견과 사실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걸 강조했지만, “리포터의 의견으로 채색되지 않은 사실적 리포트는 없다”는 걸 인정하긴 했다.

  • “팩트를 진실되게 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팩트에 대한 진실을 리포트하는 것이 지금 필요하다”

  • 위원회는 “그 자체로는 정확하지만, 고립된 팩트의 기록은 오인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진실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허친스 위원회의 언론에 대한 두 번째 요구 조건과 관련 - "사회에서의 모든 중요한 관점과 관심"에 대한 논의를 촉진해야 한다는 것 - 인터넷은 이러한 의무에 대해 미디어를 안심시켰다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가치 있는 생각이 "미국의 귀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온라인에서 발행되는 다양한 옵션들을 고려하면 덜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은 공정성, 정확성 및 맥락 - 신중한 편집과 팩트체킹이 제공할 수 있는 보호 수단 -에 주의를 덜 기울입니다. op-ed 페이지는 여전히 필수적인 민주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섹션을 감독하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의 엄격함에 대한 새로운 헌신이 요구되며, 온라인에서 맥락을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2001년에 처음 출간돼 2007 년과 2014 년에 개정되고 업데이트 된 “저널리즘의 요소 : 언론인이 알아야 할 것과 대중이 기대해야 할 것”에서, 빌 코바치 (Bill Kovach)와 톰 로젠스틸(Tom Rosenstiel)은 저널리즘의 핵심 요소가 “처음부터 기자로부터 온 적이 없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대신 그것들은 대중의 요구에서 나왔다 했습니다. 20세기에 와서, 언론은 그들의 가장 큰 의무가 대중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저널리즘에 문제가 되는 모든 위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집자, 언론사 및 기타 미디어 담당자가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 객관성에 대한 톰 로젠스틸의 트윗 번역

트위터에 열렬한 편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재촉으로, 저는 제가 좋아했던 객관성을 주제로 @nytime에 @weslelowery가 기고한 강력한 에세이에 응답하기 위해 댓글을 보냅니다. 그러나 '도덕적 명확성'(moral clarity)에 대한 요청은 좀 더 명확해야 할 것 같아요. 조금만 참으세요. (1/22)

'20년대에 객관성의 개념이 저널리즘으로 넘어왔을 때, 저널리스트들은 편견이 없다는 걸 제안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였어요. (2/22)

(특히 러시아) 보도에서 무의식적 편견이 발견된 것에 대한 세련된 대응 차원에서 과학에서 저널리즘으로 이입된 아이디어입니다. (3/22)

그 아이디어는 저널리스트들이 객관적이고 관찰 가능하며 반복 가능한 검증 방법을 보도에 채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저널리스트들은 결코 개인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었죠. (대신) 그들의 보도 방법은 객관적이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그럴 수 없었기에. (4/22)

그 의미를 기자들이 너무 오해해서, 거의 고개를 돌릴 정도였어요. 많은 죄악의 잔재이며, 현장의 완고한 반지식주의와 이론에 대한, 도제식 모델을 중심으로 너무 많이 구축된 저널리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5/22)

객관성의 참뜻을 이해하려면 방법의 투명성과 검증의 규율을 생각해 보세요. 객관성은 중립성이나 무관심이 아닙니다. 그러한 개념들은 무의식적인 편견을 불러 일으킵니다. 객관적 방법이나 과정이 투쟁하려 했던, 바로 그 문제죠. (6/22)

리프먼은 저널리즘에서 "더 과학적인 정신"에 대해 말했습니다. 바이라인과 날짜 라인은 객관성의 초기 예입니다. 객관성은 지배적 개념으로서 "현실주의"를 대체했는데, 실제 사람들이 그걸 믿는 것처럼 만든다면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순수 픽션을 불러들였습니다. (7/22)

이런 객관성의 개념은 결코 균형으로 단순화하거나 "따옴표 저널리즘" 보도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널리즘은 항상 진실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정확성만이 아니었습니다. 1947년 허친스 위원회는 "사실로는 정확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실이 아닌" 계정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8/22)

그것은 부실한 맥락의 실패로 소수 공동체를 커버하지 못한 기사들을 인용했고, 근거없이 인종에 대해 언급하고 고정관념도 강화했습니다. "그 사실을 진실되게 보도하기엔 더이상 충분하지 않다. 이제 그 사실의 진상을 보도할 필요가 있다." 70년 전의 일입니다. (9/22)

데이비드 할버스탐, 호머 비가트, 조지 오웰 등 여러 세대에 걸친 최고의 저널리스트들은 정치 속기법과 저널리즘의 차이, 기득권자들의 마우스피스가 될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었습니다. (10/22)

열정적이며 독립적인 조사(inquiry)란, 양쪽에 대등한 대우를 해 주거나, 기사에 양면만 있다고 생각하거나, 진실을 찾는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구실로 균형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1/22)

개인적인 배경을 부인하기는커녕, 이런 종류의 조사는 WASP나 불교, 백인, 흑인, 유대인, 라틴계,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사람들의 배경이 오히려 항상 저널리즘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편견을 인지하고 무의식적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피하는 방법입니다...(12/22)

저널리즘에 디폴트 문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끔찍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alienating), 무의식적인 편견입니다. (13/22)

기자들이 단순한 당파주의에 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오는 동안, 이러한 사고들은 저널리즘 내에서 번성하기도 했고 전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14/22)

저는 웨슬리의 에세이를 좋아했습니다. Bill Kovach와 제가 이런 논점을 지적한 Elements라는 책에 대해 언급해 주셔서 감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날 새로운 오해가 뉴스룸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게 두렵습니다. 민주주의가 의존하고 있는, 이미 약화된 저널리즘 시스템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15/22)

우리가 잘못 이해된 객관성 개념을 대체하기 위해 주관성을 채택하면 마법처럼 진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사고는 오해입니다. - 내가 열정적이며 깊게 믿는 그 것, 그 진실은 일종의 진짜 진실입니다. (16/22)

웨슬리는 '도덕적 명확성'이라는 용어를 지도 원칙으로 제안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단순히 의견을 말하는 것이 더 진실하다거나 더 도덕적인 보도 형태라고 생각하도록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고 그 효과는 비극적일 것입니다. (17/22)

저널리스트들이 주관성에 피신함으로써 객관성에 대한 결함 있는 이해를 대신하고 그들의 의견이 진정한 조사보다 더 도덕적 진정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면 저널리즘은 길을 잃게 될 것입니다.(18/22)

관점 저널리즘(Point of view)은 가장 높은 형태의 작업입니다. 하지만 오래 전에 한 대안 신문 편집자가 말했듯이, 다른 모든 관점을 이해하려고 하기 전까지는 어떤 기자도 관점을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주창자들이 최선의 주장을 하도록 놔둬야 합니다. (19/22)

만일 우리가 고정관념과 위증자에 대한 객관성을 줄이게 된다면, 그리고 심층 보도한 개방적 조사의 열망을 포기한다면, 언론인으로서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관점은 천박하고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단지 또 다른 형태의 주창일 뿐일 겁니다. (20/22)

주관성을 진실로 착각하면 중차대한 시기에, 이미 취약해진 직업적 전문성에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면, 우리의 열정이 민주주의 사회가 언론에 요구하는 목적을 압도하도록 해줘야 할 것입니다. (21 / 22)

이게 웨슬리의 의도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그의 훌륭한 에세이가 명확하게 누군가에게 이해되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 30 -

1... I’m not avid on Twitter, but at others’ urging I want to offer a thread in response to @wesleylowery’s powerful essay in the @nytimes on objectivity, which I liked. But the call for “moral clarity” I believe could use more clarity... Please be patient. This is 1 of 22.
2... When the concept of objectivity migrated to journalism in the ‘20s, it was not intended to suggest journalists were without bias. Actually it was just the opposite... 2 of 22
3... The idea migrated from the sciences to journalism as a sophisticated response to the discovery of unconscious bias in reporting (in particular of Russia)... 3 of 22
4... The idea was that journalists needed to employ objective, observable, repeatable methods of verification in their reporting--precisely because they could never be personally objective. Their methods of reporting had to be objective because they never could be... 4 of 22
5...That meaning is so misunderstood by journalists it has almost been turned on its head. That is a residue of many sins, the field’s stubborn anti-intellectualism and resistance to theory and a journalism education system built too much around the apprenticeship model. 5 of 22
6... To understand objectivity’s true meaning, think of transparency of method and discipline of verification. Objectivity is not neutrality or disinterestedness. Those notions invite unconscious bias--the very problem the objective method or process was meant to combat. 6 of 22
7 ... Lippman talked about “a more scientific spirit” in journalism. Bylines and datelines were early examples of objectivity. Objectivity replaced “realism” as the dominant concept, which was if you made it seem real people would believe it. It invited pure fiction. 7 of 22
8...This notion of objectivity never was meant to simplistic as balance, or “he said he said” reporting. Journalism was always aimed at truth--not mere accuracy. The Hutchins Commission 1947 warned against accounts that were “factually accurate but substantially untrue.” 8 of 22
9...It cited stories that failed to cover minority communities by failing lacking context, noting race gratuitously and reinforcing stereotypes. “It is no longer enough to report the fact truthfully. It is now necessary to report the truth about the fact.” 70 years ago. 9 of 22
10... For generations the best journalists like David Halberstam, Homer Bigart, George Orwell and many more were warning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political stenography and journalism and the risk of being a mouthpiece for establishment authorities. 10 of 22
11... Passionate independent inquiry does not mean mindlessly giving both sides equal treatment, thinking there are just two sides to a story, or using balance as an excuse for not doing the work of finding the truth. 11 of 22
12...Far from denying personal background, this kind of inquiry recognizes that people’s background always enriches their journalism, be it WASP or Buddhist, White, Black, Jew, Latina or Latino, male or female. This is the way to recognize bias and avoid unconscious slant...
13... There can be no default culture in journalism. That is a terrible, alienating, unconscious bias. 13 of 22
14... These ideas have thrived and battled in journalism for as long as journalists have tried to rise above mere partisanship. 14 of 22
15. I loved Wes' essay and thanks for the mention of the book Elements, where Bill Kovach and I make these points. But I fear a new misunderstanding is taking root in newsrooms today, one could destroy the already weakened system of journalism on which democracy depends. 15 of 22
16... That misunderstanding is the idea that if we adopt subjectivity to replace a misunderstood concept of objectivity, we will have magically arrived at truth--that anything I am passionate about and believe deeply is a kind of real truth. 16 of 22
17... Wes suggested the term moral clarity as a guiding principle. If that invites people to think that simply opining is some kind of truer or more moral form of reporting, they would be wrong and the effect would be tragic. 17 of 22
18... If journalists replace a flawed understanding of objectivity by taking refuge in subjectivity and think their opinions have more moral integrity than genuine inquiry, journalism will be lost. 18 of 22
19. Point of view journalism is the highest form of work. But as one alternative newspaper editor put it long ago, no reporter should assume a point of view until they have tried to understand all the other points of view. And let those advocates to make their best case. 19 of 22
20 ... If we reduce objectivity to a stereotype and a strawman--and abandon the aspiration of deeply reported open minded inquiry--then the points of view we arrive at as journalists will be shallow and unhelpful and just another form of advocacy. 20 of 22
21. If we mistake subjectivity for truth, we will have wounded an already weakened profession at a critical time. If we lose the ability to understand other points of view we will have allowed our passions to overwhelm the purpose democratic society requires of its press 21 of 22
22... I don’t believe this was Wes’ intention. But if his fine essay is not clearly understood, it could be an unintended effect. - 30 -

제이 로젠 교수의 트윗 댓글

톰, 당신은 이 스레드에서 우리에게 엄청난 서비스를 해준 것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을 지지합니다. 난 ‘도덕적 명확성'이라는 문구에 대해 별로 염려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관성을 경축하는 것은 그간 물려받아온 형태로 ‘뉴스룸 객관성’을 숭배하는 것에 대한 비참한 대안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진술한 것에 대한 문제는 “그건 그저 나쁜 저널리즘이야"라고 말하는 것에 대항해 당신이 경고하고 있는 ‘생각없는 형식’의 방어막을 진작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원인은 없고 퍼포먼스만 낮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시각/관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Tom, you have done us a great service with this thread. I endorse almost all of it. I am not as worried about the phrase "moral clarity," but I agree that celebrating subjectivity is a miserable alternative to worshipping newsroom objectivity in its received form. But... 1/

A problem with the way you have stated it is that it encourages defenders of the mindless form you are warning against to say something like, "well, that's just bad journalism." In other words, nothing caused it but poor performance. That's why I use the term "view from nowhere."

닉 디아코풀러스의 의견

기타

객관성의 어떤 역사

미디어 연구자 Robert McChesney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합니다. McChesney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신문업은 번성했으며 대부분의 주요 도시는 진정한 저널리즘 뷔페였습니다. 각 언론사의 품질은 매우 다양했으며, 선택할 수 있는 관점이 많았기 때문에 객관성에 대한 기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기간행물을 진리의 중립적 결정자로 만들려는 바람도 없없습니다. 각 신문사들은 당파적일 것으로 (당연히) 기대됐습니다.

신문사 사주들은 부자가 되었지만, 그들은 또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수익은 주로 구독과 광고에 의존했습니다(아, 얼마나 기이한 시기였는가). 하지만, 이러한 투자자(funders)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신문들은 이전에 단편화되었던 소규모의 당파적 매체의 독자층을 끌어들이고 광고 달러를 배척하지 않기 위해 충분히 넓은 호소력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McChesney는, 현대 저널리즘 표준이 현금에 대한 열망 속에서 고안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언론사와 사주들은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명시적 정치 권력을 희생할 것"이라고 쓰고, 심지어 저널리즘스쿨 설립을 위한 로비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McChesney의 추정에 따르면, 객관성과 같은 저널리즘 규범들은 적어도 이 직업에서 진리를 유지하는 고상한 방법으로 전적으로 고안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점점 더 집중되는 신문 산업으로 돈이 유입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One History of Objectivity

One compelling account is laid out by media scholar Robert McChesney. McChesney's research has shown that, in the 19th century, the newspaper industry was flourishing, and almost every major city was a veritable buffet of journalism. The quality among each outlet varied greatly, and, since there were so many perspectives to choose from, there was no expectation of objectivity, and no desire to make any periodical a neutral arbiter of truth -each was expected to be partisan.

However,in the 20th century,news outlets began to concentrate and consolidate rapidly,as owners bought up smaller competitors and expanded the reach of their own paper. As a result, the buffet dwindled to one or two menuitems for eachcity. Newspaper owners became rich, but they also faced a problem.Revenue depended largely on subscription and advertising (ah, what a quaint time it was), but,in order to secure these funders,newspapers had to have a sufficiently broad appeal to attract the previously fragmented readerships of smaller, overtly partisan outlets and to not repel advertising dollars. It was in this lust for cash, McChesney argues, that modern journalistic standards were conceived.Publishers and owners, he writes, "would sacrifice their explicit poltical power to lock in their economic position," going so far as to lobby for the establishment of jo urnalistic schools. Journalistic norms, such as objectivity,by McChesney's reckoning, were at least not entirely designed as a noble way to uphold truth in the profession. They were installed to keep money flowing in to an increasingly concentrated newspaper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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