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집단지혜 그리고 신뢰에 이르는 길
“우리는 어떤 근거로 대체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 공동체가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믿는가?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가정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바친다. 즉 그들은 믿을 만한 기관에서 훈련을 잘 받았고, 합리적으로 공평무사하다는 가정이다. 이 두 기준을 모두 만족할 때 우리는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다.”(이메뉴얼 월러스틴 ‘지식의 불확실성’ 중에서)
과학 혹은 과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들. 그들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오로지 과학으로만 다가갈 수 있는 근대적 인식체계가 도전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근대적 지식체계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과 권위를 인정받았던 과학자(넓은 의미의)들은 작금 주관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비판에 둘러싸여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왜 과학자를 신뢰했었나
황우석 박사의 경우처럼 거짓 결과물로 대중을 호도하는 경우도 있고, 공공기관의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연구결과를 특정 편향으로 내놓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월러스틴 교수가 언급한 바와 같이 탐구의 과정, 관찰이 행해지는 절차 자체가 탐구대상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너무나 많이 변화시켜서 획득한 데이터를 거의 믿을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저널리즘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월러스틴 교수가 던진 질문을 이렇게 변형해보도록 하죠.
“우리는 어떤 근거로 대체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전문 언론인(기자와 편집기자)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믿는가?”
기자 집단이 신뢰받았던 이유
그간 기자집단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들이 믿을 만한 기관에서 훈련을 잘 받았고 합리적으로나 객관적으로 공평무사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근거는 이제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기자집단은 더 이상 공평무사하지 않으며, 잘 훈련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편향적 기사쓰기 행태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실이며, 잘 훈련받지 않은 블로거들이 오히려 잘 훈련받는 기자들보다 전문성의 우위에 선 경우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근대체제에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진리를 규명하려는 전문가에 대한 존경이 신뢰의 중요한 토대가 됐습니다. 과학자(학자나 연구자, 기자)의 기사와 논문은 그만큼 신뢰를 획득하기에 충분했고, 대중들은 그들의 땀의 결과물을 진리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 우리가 서 있다고 생각지는 않나요?
미디어계로 좁혀 보고자 합니다. 최근 블로고스피어에서 유행하고 있는 집단지성을 활용한 신뢰도 높은 콘텐트 배열 방식은 과학적 접근방식으로 신뢰를 얻고, 결과적 신뢰를 생산한 전문 에디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공평무사하고 잘 훈련 받았을 것이라고 믿었던 전문 에디터나 기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혹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편집권을 남용했습니다. 조중동이 비판받은 이유가 바로 이런 사례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중들의 집합적 지혜에 의존하는 방식이 오히려 신뢰에 접근하는 데 훨씬 유용하다는 걸 깨달은 일부 집단이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 새로운 신뢰 구축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선보인 것이죠. 이 과정에서 몇몇 오류들이 발견되기도 했고(Digg.com의 경우처럼) 실수도 있었지만 이젠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전문 기자라는 직군은 사라질까?
문제는 앞으로 전문 기자는 어떠한 땅위에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까요? 사라질까요? 또 지식의 불확실성 시대,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론의 이분화 시대가 쇠퇴하면, 전문가의 지위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제 생각을 짧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근대세계에선 권위와 신뢰를 받아왔던 전문가 집단이 대중을 이끄는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전문가 집단과 대중이 동등한 계층으로 취급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때론 대중이 전문가 집단을 리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 권위의 붕괴는 전문가주의의 붕괴이지 전문가 자체의 소멸과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문 기자나 전문 편집자의 역할은 과거보다는 약화될 것이지만, 이 직군이 사라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생산단계에서는 파워블로거와 전문 기자가 동일하게 대접받게 될 것이고이라고 보고요. 특히 이 과정에서 누가 더 많은 수정 과정을 거쳐 더 높은 단계의 신뢰도를 창조해나가는가가 매우 중요한 평가요소로 자리잡게 될 것 같습니다.
편집단계에선 집단지성의 결과물과 전문 편집자의 전문성을 편집된 결과물이 독자들의 시험대 위에 동등하게 올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읽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참고 문헌(2019년 12월29일 문헌 추가)
- Wallerstein, I. M. (2004). The uncertainties of knowledge. Temple University Press. 유희석 옮김. (2004) 지식의 불확실성.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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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댓글
해피씨커 2007/07/16 12:21
이 글을 읽으면서 또 다른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수들이 신뢰를 받을 수 있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어찌보면 이미 신뢰는 무너진것 같은데, 변화는 없네요 .
몽양부활 2007/07/17 22:32
해피씨커님 안녕하세요. 교수 사회의 변화를 당장 기대하기는 힘들 듯합니다. 워낙 두터운 기득권 내에 온존하는 집단이라. 언젠간 그들도 기득권의 보호막 아래 편안하게 지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