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Arc 도입과 디지털 전략
CMS는 언론사 업무 문화의 기술 결정체입니다. 그 언론사의 일하는 방식이나 과정 등이 이 기술 안에 반영돼 녹아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CMS의 변경 혹은 교체가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기술 하나를 더하거나 빼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철학, 지향, 조직 문화 등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조선일보의 아크 도입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조선일보의 이후 전략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CMS는 개발을 주도한 언론사의 문화 응축체입니다. 아크(Arc)는 워싱턴포스트가 일해온 방식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기술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애써온 흔적들이 아크 안에 스며들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언론사를 위한 보편적 콘텐츠 플랫폼으로 서서히 변모해가고 있긴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탈색되지는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기술적 구성물을 도입한다는 건 결국 워싱턴포스트의 일하는 문화를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워싱턴포스트가 그들의 CMS를 판매하겠다고 밝힌 것은 2014년 말의 일입니다.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지 약 1년여가(16개월) 지난 뒤였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신문기업이 아니라 기술 기업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말이죠. 여기에 아마존의 자산이 결합돼 하나의 상품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처음엔 미국의 대학신문으로 대상으로 라이선싱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콜롬비아대, 예일대 등등을 중심으로 말이죠. 그 이후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미국 내 주류 언론으로 시장을 확대해갔습니다. 지금은 복스의 코러스, 워드프세스와 함께 언론사들이 선호하는 CMS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아크 도입이 지니는 효과를 언급하기에 앞서 아크의 기술적 구성물들(Editorial and Site Delivery 상품 기준)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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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er(기사 입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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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bsked(데스킹 / 기사 스케줄 관리) : 발행된 기사의 수와 기사 발제, 발제 수용율, 마감 시간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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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Builder : 브랜드 및 기획 페이지 생성 및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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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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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deo Center : live-to-VOD 워크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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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dito : 콘텐츠 다변수 테스트 툴. 일종의 A/B 테스팅 툴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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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vertis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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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vis : 콘텐츠 맞춤 추천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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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scription : 구독 솔루션
초기엔 3~4가지 구성요소로 이뤄졌지만 지금은 9개의 구성물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자들이 매일매일 사용하는 국내산 CMS와 비교해보면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 쉽게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크는 AWS 위에 구축돼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플랫폼입니다. 조선일보의 데이터들은 앞으로 AWS로 이전된다는 의미입니다. 조선일보가 그동안 데이터센터를 어디에서 어떻게 운영해왔는지는 잘 모릅니다. (추정하기로는 CDN 정도는 GS네오텍인 것으로 보이고, 자체 클라우드도 GS네오텍에서 운영을 대행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GS 쪽과 사돈 관계인 점도 고려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전략 ‘저널리즘의 디지털 중심성’
아크의 도입은 향후 디지털 전략에서 워싱턴포스트를 일정 수준 닮아 갈 수 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아크는 디지털 제작을 우선하는 시스템입니다. 종이신문은 후순위에 존재합니다. 종이신문 발행 중심으로 작업 프로세스가 정의돼 있고, 그것에 맞춰 인력이 할당돼있는 구조는 변화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디지털 발행을 먼저 염두에 두면서 기사를 제작하는 대전환이 시작되는 신호탄일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사 생산, 발행, 유통, 소비와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이 이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면서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와 습관도 변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기사의 포맷도 훨씬 다양해질 것입니다. 아크의 기사입력기라 할 수 있는 콤포저의 장점은 비주얼 요소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기사 입력기가 제공하지 않았던 다양한 비주얼 요소들을 앞으로는 손쉽게 제작해 삽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방상훈 조선미디어 대표는 2020년 신년사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했습니다.
"게다가 아크(ARC)는 AI시대의 핵심인 데이터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의 데이터가 쌓이면 독자 개개인에 최적화된 기사와 맞춤형 광고를 더 정교하게 제공할 수 있고, 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방 대표는 데이터 저널리즘,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실험들을 디지털 공간에서 시도해볼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텍스트 기사 생산에만 익숙해있던 기자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능숙한 기자들에겐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략 담당 등 경영진 쪽의 변화도 암시합니다. 방 대표는 데이터 중심의 전략 수립 문화를 안착시킬 것을 경영진 등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크에 포함된 데이터 분석툴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임무가 부과될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Websked의 화면
무엇보다 편집과 관련한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추적될 수 있다는 점이 조직 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Arc의 편집 관리 툴인 Websked가 조선일보의 일하는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Websked의 대시보드를 보면, 가장 상단에 총 생산한 기사수, 게시 요청의 수용 비율, 마감시간 오버 평균값, 마감시간 준수 비율 등이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각각의 태스크별로 관여한 담당자도 공개되고 추적됩니다. 부정적인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 확인이 간편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수많은 기술적 특성들은 워싱턴포스트가 디지털 전환을 꾀하면서 쌓아온 경험들과 문화들이 기술의 형태로 외재화된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업무 프로세스와 관련한 고민들이 구석구석 남아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켜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만큼 워싱턴포스트의 제작 프로세스를 조선일보가 수용한다는 의미도 갖는다고 봅니다.
별개 : 제가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조선비즈가 아닌 조선닷컴에 아크를 적용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미 유연한 CMS를 도입해 실험해본 적이 있던 조선비즈가 아니라 사실상 조선일보의 본판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닷컴에 이 플랫폼을 도입한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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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의 관계 변화
앞선 방상훈 대표의 신년사를 다시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국내 데이터 저널리스트들은 그들이 제작한 스토리가 네이버의 플랫폼에서 재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토리를 재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요소들이 네이버 인링크 플랫폼 안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플랫폼 안에서의 강력한 노출 혜택을 데이터 저널리즘의 결과물들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조선일보가 이를 모를 리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방 대표는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50만 달러라는 적잖은 투자를 감행하면서까지 아크를 도입했다면, 아크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물들은 온전한 형태로 네이버엔 노출되지 못할 겁니다. 투자의 효과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면 결과적으로 ‘네이버 해바라기’ 전략과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방 대표의 신년사는 네이버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저널리즘 역량을 키워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크가 자랑하는 맞춤형 광고와 클래비스 같은 콘텐츠 추천 API는 조선일보의 플랫폼 안에서 작동할 때 빛을 발합니다. 워싱턴포스트처럼 말이죠.
네이버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도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아크를 도입하면서 Subscription 상품까지 포함시켰느냐입니다. 아크는 Arc Subscriptions라는 상품을 별도로 제공하고 있는데요. 만약 조선일보가 이 상품까지 구매를 했다면 네이버와의 관계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가 제공하기로 한 구독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 상품까지 묶어 구매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메시지가 네이버와 결별하겠다는 과감한 선언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조선일보의 저널리즘이 가치를 내보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자사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저널리즘과 비즈니스 실험들을 지속하되, 네이버와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얻을 것은 얻는 관계를 게속 유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