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꿔놓은 스토리텔링과 뉴스 비즈니스

비대면 시대의 미디어 소비

코로나19가 불러온 수많은 변화의 한복판에는 미디어 소비가 있습니다. 집 밖으로, 혹은 사무실 밖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시민들은 그 시간을 대체하기 위해 다양한 미디어로 눈을 돌렸습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상징되는 영상 미디어의 소비, 코로나19 관련 최신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정보 소비, 지루함과 한가함을 달래기 위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소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만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구성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코로나19에 대한 최신 정보를 확인하는 것 이외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재미/흥미 콘텐츠 소비가 늘어났다는 점일 겁니다.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다시피 봉쇄 조치 등으로 제한된 이동 반경을 경험한 시민들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우울한 기분을 위안하기 위한 차원에서 흥미와 재미, 즐거움을 유발하는 미디어 콘텐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이는 국내외를 구분할 것 없이 동일한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아래 세계경제포럼이 비주얼 캐피털리스트(Visual Capitalist)를 인용해 공개한 차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음악을 듣거나, 영화나 쇼를 시청하고, 흥미로운 영상을 시청하는 것 그리고 시간을 떼우기 위해 게임에 몰입하는 행동은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 속에서 그들만의 생존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또다시 주목할 만한 것은 세대간 미디어 소비의 차별화일 것입니다.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세대별로 미디어 소비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게 형성이 됐습니다. 이를테면, GenZ 세대는 음악을 듣는 시간이 더 증대한 반면, 밀레니얼과 X세대는 정보 업데이트 증가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경제 뉴스를 소비하는 비중이나 증가율도 세대별로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비록 큰 차이는 아닐 수 있겠지만 이처럼 각 세대별로 선호하는 미디어 소비의 형태가 달랐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고 뉴스 전반의 소비를 이해할 때도 염두에 둬야 할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미디어 소비의 세대별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동일한 기관에서 발표한 세부 데이터 한 가지를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 지불하지 않았던 미디어 서비스에 대해 지불을 고려하고 있는 대상의 비율에 대한 조사입니다. 여기서도 세대별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다른 어떤 세대보다 GenZ는 팬데믹 국면에서 콘텐츠 유료 구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넷플릭스. 디즈니+와 같은 영상/엔터테인먼트 미디어들이지만, 뉴욕타임스와 같은 뉴스 서비스 구독도 비교적 의미 있는 비중으로 랭크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유료 구독에 대한 지불 의사가 높아진다는 점을 관찰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부머 세대보다는 X세대가. X세대보다는 밀레니얼 세대가 디지털 유료 구독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팬데믹 국면에서의 유료 구독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은 팬데믹 이후로도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대면 시대 뉴스 소비의 특징

1) 신뢰있는 대형 언론사 뉴스 소비 증가 및 쏠림


뉴욕타임스의 2020년 4월7일자 기사 ‘The Virus Changed the Way We Internet’ 그래프 재인용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이 강제든 비강제든 늘어나면서 덩달아 뉴스에 대한 소비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코로나19에 대한 최신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차원이긴 했지만 부분적으로는 다른 동기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신뢰 있는 정보를 생산하는 뉴스 사이트에 더 많은 수용자들이 몰렸다는 점입니다. 위 시밀러웹이 조사한 트래픽 추이를 보면,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대형 언론사로 트래픽이 집중된 흐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처럼 페이월을 올린 뉴스 사이트에 더 많은 수용자들이 몰려갔습니다. 온갖 허위조작정보가 난무하는 공간에서 신뢰 있는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들 사이트들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에 대해서는 유료 장벽을 쌓아올리진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무료로 뉴스를 확인했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유료 구독 향상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2) 비즈니스 뉴스 소비의 증가

또다른 특징이라면 비즈니스 / 파이낸스 뉴스에 대한 소비 증가입니다. 전문 조사기업 타불라Dukas Linden Public Relations이 최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적게는 46% 많게는 69%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재무/비즈니스 관련 뉴스를 더 많이 읽고 시청했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2가지를 의미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 뉴스에 대한 수요가 큰폭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가계 소득이 줄어들고 회사의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자기 투자의 일환으로 경제뉴스를 더 챙겨보게 됐다는 의미일 겁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제 뉴스를 얻기 위해 선택한 뉴스 소스는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등 유료 경제 뉴스 사이트였다는 점입니다. 이 조사 기관의 CEO인 리차드 두카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배런스, CNBC, 뉴욕타임스, 로이터 등 핵심 매체가 비즈니스와 금융 산업에 대해 보유하고 있는 신뢰성은 뉴미디어나 소셜미디어에 의해 복제될 수도 없고 복제된 적도 없다.“

즉 복제할 수 없는 신뢰를 갖춘 뉴스 미디어, 그 중에서도 경제 매체들이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장 큰 혜택을 봤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3) 함께 주목해야 할 현상으로서 확대되는 뉴스 피로감

뉴스의 생산 과잉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수많은 미디어 생산 유형이 등장하면서 정보의 생산 과잉은 기본 상태가 됐습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생산 과잉에 하나의 한층위를 더 덧붙인 격이 됐습니다. 과잉에 과잉을 더하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더 많은 정보가 인터넷 공간을 휘젓는 일상이 보편화한 것입니다.

과잉은 매번 피로를 낳습니다. 피로는 다시 기피로 이어집니다. 뉴스 피로(news fatigue), 뉴스 기피(news avoid)는 최근 들어 일상적 용어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입니다. 2017년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를 보면, 적게는 6% 많게는 57%가까지 “때로”, “자주” 뉴스를 기피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대부분이 뉴스를 신뢰하기 어렵고, 자신을 화나게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한국만 해도 26%가 동일한 행태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의 6%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이 보고서를 분석한 루스 팔머와 벤자민 토프 교수는 다음과 같은 논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뉴스 회피, 뉴스 피로, 그리고 현대 디지털 시대의 다른 병리학들은 우리의 미디어 시스템과 민주주의의 건강과 관련된 더 큰 문제들의 증상들이다. 자극적인 의견과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풍부하지만 합의된 사실들이 부족한 세상에서 시민들은 어떤 정보를 제공받을 것으로 기대하게 될까? (언론사는) 어떻게 정보를 계속 전달하고 점점 더 그것에 수반되는 지적, 감정적 부담에 대처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2019년에는 이러한 우려가 나아지기 전에 더 악화될 것으로 추측한다.”

생산의 과잉은 자극적인 의견, 충격적인 이미지들의 과잉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형들의 뉴스와 정보가 뉴스 피로도와 기피 현상을 부추겼습니다. 그들의 예상대로 2019년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해로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2020년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코로나19는 이를 증폭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그래프가 가리키는 방향을 다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 디지털뉴스리포트, 영국 시민 대상 뉴스 기피 사유에 대한 조사.

보다시피, 코로나19로 뉴스를 기피하게 되는 이유로 수용자들은 “내 기분이 나빠진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어서 “뉴스가 너무 많다고 생각돼서”라고 응답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의 뉴스 회피의 사유 대부분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미 2017년부터 관찰됐던, 뉴스 과잉에 따른 뉴스 피로, 기피 현상은 코로나19 국면으로 거치면서 더욱 커지고 뚜렷해졌습니다.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쁜 기분이 커진다는 이유입니다. 뉴스가 본질적으로 수용자들에게 행복감과 만족감,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유형은 아니지만, 그것이 수용자들의 나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형태로 부정적 영향을 증폭시키는 것은 뉴스 생태계를 위해서도 위험한 징후라고 해석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뉴스 피로감의 증폭이 가져올 결과는 명확합니다. 뉴스의 과잉 소비가 이후 뉴스의 과소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뉴스 산업 전체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공동체의 갈등을 드러내 해결책을 모색하고, 공동체의 대화를 촉진함으로써 민주적 공동체를 구성하는데 돕는 기능으로서 저널리즘의 역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코로나19와 같은 비대면이 불가피한 시기,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전달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진 시기에 뉴스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축적되고 누적된다면, 코로나19 이후 시대 뉴스 산업이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매우 협소해진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비대면 시대 수용자를 늘이기 위한 뉴스의 형태

신뢰 높은 언론사로의 쏠림, 비즈니스 뉴스에 대한 선호, 동시에 진행되는 뉴스 피로도의 증가. 이것이 비대면 시대 뉴스 소비 행태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콘텐츠 마케팅 플랫폼 데이블의 자료를 보면, 2월 급증했던 코로나19 관련 뉴스 유입은 3월 초 들어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불안 등을 증폭시키는 뉴스에 대한 거부감이 본격화했다는 방증일 겁니다. 수용자들의 관심과 지식이 더 깊어져야 할 시점에 오히려 뉴스는 수용자를 잃어가는 반전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 당면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대안을 찾기 위해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려고합니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될 무렵, 프랑스에서는 유전적, 인종적 특이성으로 인해 동양인들만이 코로나19에 감염된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어느 언론이나 할 것 없이 팩트체킹에 나섰지만 이 루머가 진실로 확증될 만한 근거는 부족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저널리즘의 판정을 받았지만 이 소문이 잦아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인들의 그릇된 믿음을 강화한 그 이면엔 유럽인들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당시까지만 해도 전무하다는 통계적 사실로서 ‘팩트’가 존재했습니다. 기실, 기자들에게 팩트는 신성한 존재입니다. 진실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서 팩트는 모든 저널리즘 행위의 출발점이라는 강한 믿음이 100여 년 간 언론계를 지배해 왔습니다. 1850년대 와이어 뉴스 서비스의 출현으로 팩트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 이후 팩트는 비판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숭고한 성역이 됐습니다. 하지만 팩트는 그 자체로 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진실을 구성하는 작은 퍼즐 조각에 불과합니다. 앞선 코로나19 루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적지 않은 허위조작정보의 바탕에는 부인할 수 없는 팩트가 존재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팩트의 퍼즐 조각 한두 개만이 들어있습니다. 허위조작정보의 생산자들은 이 작은 팩트 한두 개에 살을 덧붙이고 포장을 입혀서 거대한 거짓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진실인양 퍼뜨립니다. 심지어 그들이 인용하는 팩트들의 다수는 신뢰할 만한 언론사들이 보도한 것들일 때도 많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의 믿음을 형성하고 있는 팩트 중심주의, 특히 불안감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나타난 팩트 열거주의는 진실뿐 아니라 거짓을 구성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도 제공합니다. 저널리즘 의식이나 취재 역량이 부족한 허위정보 생산자들은 키보드 앞에 앉아 몇 번의 뉴스 검색을 거쳐 허위조작정보를 꾸며냅니다. “논란“, ”공방“이라는 제목 아래 보도된 팩트들은 거짓임이 분명함에도 발화자 행위의 사실성으로 인해 진실처럼 둔갑한 뒤 허위조작정보의 원료로 활용됩니다. 넓게 보면 이는 랄프 퓰리처가 1912년에 언급했던 ”정직한 부정확성“의 대표적인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팩트 그 자체는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다만 반박, 검증, 계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귀중하게 여깁니다. 그것을 귀하게 여기되 ‘주의‘(ism)화 하면 안되는 까닭입니다.

1) 팩트의 맥락화 방식으로서 인터렉티브

2019년 워싱턴포스트가 448페이지 분량의 뮬러 리포트를 보도할 때 팩트만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인용문을 열거하며 복잡한 사안을 단순화하는 데에도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팩트를 전체의 퍼즐 속에서 제 위치에 배치하기 위해 내러티브를 바꿔냈습니다. 그리고 과거 기사, 보고서 등 부가 정보를 곳곳에 덧붙이며 하나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이 자체가 진실이 될 순 없겠지만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로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그들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팩트가 진실을 향하도록 하려면 워싱턴포스트의 사례처럼 팩트를 제 위치에 올려놓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넓은 맥락 안에서 팩트가 해석될 때 팩트는 힘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 너저분하게 뿌려놓은 팩트는 다른 거짓된 맥락과 결합하면서 거대한 허위정보로 이어지게 됩니다.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은 팩트와 맥락의 거리를 좁히고 사용자들의 이해와 흥미를 유발하는데 적합한 형식을 제공해왔습니다. 신문이 하나의 팩트에 가치를 더하기 위해 편집의 가치를 입혔던 것처럼, 디지털의 내러티브도 팩트가 진실을 가리킬 수 있도록 ‘구성의 가치’를 덧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기자협회보 아래와 같은 기사가 게시된 바 있습니다.

“인터랙티브는 꾸준히 잘 팔릴 뿐 아니라 유통망 문제가 오히려 언론사 자체 플랫폼 강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안 팀장은 “인터랙티브 이용자들은 한 번 보고 빠지는 게 아니라 정리된 데이터를 계속, 주기적으로 이용하는 양상을 보인다”며 “포털을 거치지 않고 언론사 사이트로 직접 들어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우리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노하우를 쌓아가며 콘텐츠 품질과 완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2) 팩트의 쉬운 접근을 위한 그래픽과 차트

지난 6월26일 워싱턴포스트는 14명의 그래픽&디자인 팀 신규 채용 공고를 내면서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뉴스룸 곳곳에 직원들이 참여하는 워싱턴포스트의 비주얼 저널리즘은 많은 수용자를 끌어모았으며, 기록적인 구독자 증가에도 기여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역사상 가장 많이 방문한 7편의 기사 중 6편이 그래픽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포스트 역사상 독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기사가 된 코로나바이러스 시뮬레이터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는 2위를 기록한 기사에 비해 3배 이상 많이 방문했습니다. 독자를 구독자로 전환하는 기록을 세운 올해 민주당 후보 퀴즈도 포함돼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문자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워싱턴포스트 역사상 가장 많이 방문한 기사가 코로나19 국면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은, 수용자들의 뉴스 소비와 관련해 몇 가지 함의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의 확산 형태처럼 생물학적이고 과학적인 복잡한 사안은 자칫 팩트의 나열만으로는 수용자들의 집중도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인터렉티브 그래프와 차트를 활용하는 방식은 수용자들의 이해를 돕고 몰입을 증대시키며 공유와 재방문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3) 소결

저명한 저널리즘 학술지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2019년 가을호에 ‘팩트를 넘어서’라는 에세이를 게재하면서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정보의 먹구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희망을 가지려면, 우리 모두는 더 넓은 내러티브를 이해해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 팩트에만 의존하는 것은 팩트에도 공정하지 않다. 언론인으로서 우리는 스토리가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를 고려해야 하고, 팩트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을 인식해야 하고...”

팩트를 둘러싼 거대한 진실의 박스를 알려고 노력할 때에만 팩트는 저널리즘적 가치를 지닐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고된 작업은 트래픽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면 모든 것을 기사화해야 한다는 인식으로는 구현될 수 없습니다. 팩트를 맥락의 퍼즐판 위에 올려놓는 작업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가디언과 르몽드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좋은 전범입니다. 2019년 가디언은 주간 기사 생산량을 1/3이나 줄이고도 구독자나 방문자수를 늘리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랑스의 르몽드도 기사수를 25%나 줄였지만 오히려 디지털 구독자는 11%나 늘어났습니다. 이들은 저널리즘과 비즈니스 양측면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잡다한 뉴스의 생산을 줄이고 맥락적 기사를 생산하는데 집중하면서 이러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었습니다.

맥락과 결합되지 않은 팩트들, 사실여부조차 걸러지지 않은 작은 팩트들의 조각들이 트래픽 유발을 위해 과도하게 생산되면서 허위조작정보의 미끼가 되어 온 사실을 우리는 가볍게 여겨선 안됩니다. 그러한 유형의 기사량을 줄이되, 더 넓은 맥락이 첨부된 가치 있는 저널리즘 생산물에 집중하는 것이 허위조작정보의 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인터렉티브나 그래픽 등 스토리텔링의 형식까지 변화하는 것을 감안할 때 디지털 공간에서 표현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디언이나 르몽드처럼 수익의 위기 없이 더 많은 독자들을 신뢰의 브랜드 앞에 모이게 하는 묘안일 수 있습니다.

나가며

코로나19 이전부터 정보 과부하(overload)는 미디어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정보 자체가 희소 가치를 지니던 시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차적 희소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언제까지나 그것이 희소적 재화로 남아있을지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정보 과부하는 미디어의 생존 질서를 뒤바꾼 혁명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코로나19로 더욱 강화한 정보 과부하 현상은 이를 더욱 또렷하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1) 정보 과부하와 고객직접접점(Direct To Consumer, DTC)

정보과부하의 1차적 대응 방식은 큐레이션이었습니다. 수많은 뉴스를 수집해 그럴 듯하게 배열함으로써 수용자를 유인했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기술(알고리즘)이 배합됨으로써 맞춤형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가 등장하게 됩니다. 네이버와 페이스북이 대표적입니다. 뉴스 큐레이션, 애그리게이터는 수용자들의 입맛, 선호 등을 파악해 수많은 뉴스의 가치를 재조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권력이 잉태되고 지금은 그 권력이 언론사의 생사여탈권을 좌지우지하게 됐습니다. 이 리그에 뛰어들기 위해 저널리즘 조직들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어뷰징에 동참해야 했고 더 많은 트래픽을 얻기 위해 기사를 부분 복제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광고주들의 이해에 휘둘려 신뢰를 대가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언론사들이 대가로 내놓은 가장 큰 자산은 고객으로서 수용자, 독자입니다. 고객과의 접점을 뉴스 큐레이터들에게 위임하거나 의탁함으로써 고객에 대한 정보를 더이상 가질 수 없는 ‘위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제공하는 몇 가지 대표 분석도구에 의지하면서 수용자들의 뉴스 소비 추세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보 과부하의 풍경 속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직접 접점을 잃어버렸고 그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지금 다수 언론사의 최대 고객은 네이버의 알고리즘이거나 제휴평가위원회 위원입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애플 뉴스+에 참여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애플 뉴스에서마저 철수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뉴욕타임스와 플랫폼 간의 건강한 모델의 핵심은 독자들을 우리의 공간(환경), 즉 우리 보도물의 게시, 독자와의 관계, 그리고 우리 비즈니스 규칙의 본질을 통제할 수 있는 환경으로 돌려보내는 직접 경로입니다. "

고객과의 관계를 직접 통제함으로써 구독 수익의 증대를 꾀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플랫폼과의 결별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플랫폼의 관계를 재설정하게 된 핵심 요인은 수익모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객과의 직접 접점과 그것에 대한 제어를 기반으로 하는 구독 모델로 완전하게 넘어가고 있기에 이러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효과는 위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코로나19 국면의 3달 동안 60만명의 신규 구독자를 확보로 현실화됐습니다. 트럼프 범프에 이어 코로나19 범프까지 고객 직접 접점을 확보한 이들의 도전과 결행은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고객 직접 접점의 확대는 뉴스레터, 온라인 비대면 이벤트 등으로 입구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해외 언론사들은 무료 행사, 뉴스레터 등으로 고객들의 데이터를 확보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뉴스레터를 유행의 플랫폼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의 1st Party 데이터 확보로 바라보는 관점이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고객 데이터를 보유하지 않은 언론사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데 제약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터를 구매하거나 데이터를 지닌 플랫폼에 기생할 수밖에 없어서입니다.

2) 정부 과부하와 신뢰 구축을 위한 수용자 우선주의

정보 과부하는 생산자 중심 정보 생산 모델의 근본적인 혁신도 요구합니다. 수용자가 받아들이지 않는 정보는 그저 웹이라는 공간을 부유만 할 뿐이며, 소비되지 않은 채 아니, 발견되지 않는 채 검색 결과의 후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정보 수용자들에게 주입하려는 의도는 이 과정에서 배척되거나 구축됩니다. 정보 과부하라는 제약 조건에서 그나마 생산자 중심 모델이 존속되려면, 뉴스 서비스의 희소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동일한 뉴스, 동일한 정보라도 수용자들에게 전달하는 서비스 방식이 희소적이라면, 내러티브가 특별하다면 해당 정보는 발견되고 소비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맞춤형 소비를 유인하는 다양한 서비스 모델이 각광을 받는 배경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서비스 희소 가치도 어디까지나 제한적으로만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수용자들의 지속적인 관심(Attention)을 얻고 재방문을 확보하려면 가장 근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신뢰의 문제입니다. 생산된 정보가 충분히 미덥지 않으면 어떤 기술의 조작적 서비스 모델을 시도한다더라도 반복적인 수용자를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신뢰 있는 뉴스 사이트로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퍼트남은 사회자본을 “조정과 협력을 촉진하는 네트워크, 호혜적 규범, 사회적 신뢰 등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퍼트남의 정의에서 협력적 네트워크, 호혜의 규범, 사회적 신뢰가 사회자본의 핵심구성요소입니다. 이 구성 요소들은 서로 시너지를 내며 상승효과를 가져옵니다. 이를테면, 시민관여의 수평적 네트워크가 호혜의 규범과 신뢰의 형성을 가져다주며, 또한 그것이 협력과 의사소통을 촉진시킨다는 설명입다. 세 가지 요소는 그래서 떨어뜨려놓고 상상해서는 안됩니다.

코로나19 시대, 미디어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도 여기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뢰는 수평적 네트워크에서 비롯된 시민의 관여와 참여 속에서 형성되고 긍정적 평판으로 안착됩니다. 그리고 함께 협력하며 조정되는 과정을 거칠 수 있게 됩니다. 즉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미디어 관점에서는 수용자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숙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수용자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과 자주 대화해야 하며 그들의 갈증과 어려움을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과 동등하고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갈 때에만 얻어질 수 있는 축적의 결과값입니다. 수평적 네트워크는 수용자들의 관심과 정서, 필요에 귀를 기울이는데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뉴스나 정보 생산자들이 수용자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만 비로소 접근할 수 있는 지난한 관계적 산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팩트에 그치지 않고 맥락을 더하며 이를 다양한 내러티브로 재구성할 수 있을 때 그 관계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신뢰라는 사회 자본의 특성상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신뢰를 구축해온 기성 미디어는 상대적 우위의 지위를 쉽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왜 코로나19 국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소수 대형 언론사에만 트래픽이 집중되는지를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사들 가운데 이런 상대적 우위의 위상을 쉽게 확보한 사례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포털 종속성이 초래한 ‘신뢰의 헌납’을 그들이 수년간 받아들여 왔기에 전환 비용도 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뢰는 비즈니스의 유연확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 자본을 확보한 행위자와 그렇지 않은 행위자 간의 경쟁은 중장기 수준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수용자의 이탈을 지연시키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사회 자본의 탄탄한 구축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희소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어떤 주체가 더 높은 수준의 신뢰라는 사회 자본을 확보하느냐가 미디어의 지속가능 여부를 가르게 될 것입니다. 다만, 정보 자체의 층위, 서비스적 층위, 비즈니스 층위 등 정보 생산, 유통, 소비 모든 층위에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비대면 시대, 뉴스 소비가 흘러가는 방향이 바로 이쪽을 가리키고 있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