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위한 버티컬 디바이스는 불가능하다?![1]
뉴스를 위한 버티컬 디바이스는 불가능할까? 가끔 이런 허황된 상상을 한다. ‘뉴스를 위한 전용(or 범용? 활용?) 기기의 등장은 필연이지 않을까?‘. ‘뉴스만을 위한‘이 될지, ’뉴스 등을 위한’이 될지 선뜻 답변하긴 어렵지만 따지면 그리 불가능해보이지도 않는다. 정체가 무엇이든 AI 스피커의 흥행과 바람은 왜 디지털 콘텐츠가 다시 물질성과 결합해야 하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다.
왜 재물질화인가
‘디지털화‘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물질성의 분리를 통한 정보의 코드화, 비트화다. 말만 어려울 뿐이다. 쉽게 설명하면, 여기에 신문이 있다고 가정하자. 신문을 해체하면 기사와 종이, 편집체계가 남는다. 빈 종이 위에 뉴스라는 내용이, 편집 레이아웃과 폰트 등의 질서체계를 갖고 결합된 형태가 바로 신문인 것이다.
디지털화는 신문에 결합된 3개의 결합 방식을 해체하고 분리시켰다. 인터넷신문을 떠올려보면 금새 이해할 수 있다. 신문에서 떨어져나간 내용(뉴스)은 비물질성의 공간인 웹 위에 코드의 형태로 재현됐다. 이 과정에서 레이아웃과 같은 편집의 논리적 질서체계는 사라졌고, 신문이라는 물질성도 제거됐다. 신문 등에서 떨어져나온 뉴스는 웹이라는 공간에, 그에 적합한 새로운 논리체계를 갖고 다시금 재배열됐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벤클러(Benkler, 2010)의 3가지 미디어 레이어 프레임을 빌려온 것이다. 벤클러는 정보의 생산과 교환에 영향을 미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3가지의 구성 요소로 분류했다. ▲물리적 하부구조(인프라) 레이어 ▲논리적 하부구조 레이어 ▲콘텐츠 레이어가 그것이다. 그의 3층 레이어 구조는 각 구조별로 제도에 제약을 받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를 확장하면 미디어의 주요 구성 요소로 전환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의 레이어 구조를 신문에 대입하면 물리적 하부구조는 종이고 논리적 하부구조는 편집의 구조와 질서(편집 구성의 프로토콜)다. 콘텐츠 레이어는 기사, 즉 뉴스라고 할 수 있다. 신문이라는 상품은 이러한 3가지의 레이어가 결합하면서 상품화됐고 독자들에게 판매됐다. 다만, 판매에는 배달이라는 서비스 레이어가 추가로 관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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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는 3층 구조를 잘게 쪼갬으로써 뉴스(특히 신문) 산업의 위축을 초래했다. 종이신문은 디지털화로 인해 물질성을 잃었고 수백년 노하우의 집적체라 할 수 있는 논리적 질서체계(편집의 가치)도 상실했다. 신문은 이제 뉴스라는 내용만 남아서 비트화된 채 가상공간 이곳저곳을 부유한다. 복제는 일상이 됐고, 유일함과 희소성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됐다. ‘단독’이 평가받는 시간과 공간도 위축되고 좁아졌다. 저작권으로 인클로징을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저작권은 본질적으로 디지털 복제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 제도다) 종이와 결합된 뉴스로서 신문은 기계시대, 그 자체의 고정성으로 인해 해체가 불가능했다. 무한 복제의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뉴스의 희소성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물리적 공간과 논리적 체계 속에서 결합된 정보라는 그 나름의 속성에서 기인했다.
정리하면, 뉴스가 종이라는 물질성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복제는 쉬워졌고 희소성의 지속시간, 엄밀하게는 정보 가치의 보전 시간이 짧아지게 됐다. 여기에 정보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뉴스 산업 특히 신문 산업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백욱인 교수는 “기호의 권력이 사물의 권력을 대체한다”라고 표현했다.
물질성과의 흡착과 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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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위한 새로운 사물(디바이스)의 등장은 가능한가 아니 필연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보자. 백욱인(2010)은 “인쇄술의 발명 이래 지식의 상업화가 의미하는 것은 지식과 결합된 미디어의 상업화를 뜻한다. 그것은 지식생산의 상품화가 아니라 지식을 상품의 형태로 가공하고 판매하는 미디어의 상업화였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와 분리된 정보나 지식은 그 자체로서의 상품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을 넓혀볼 수 있다. 정보와 지식은 미디어와 결합됨으로써 상품화했고 그것이 뉴스 산업의 수익 창출을 가능케 했다. 이러한 경향성은 디지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도 다를 것 없다는 것이다. 백욱인은 이를 두고 “정보는 재물질화할 때 가치 실현이 용이해진다”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 미디어는 역사적으로 물질성을 전제로 했다. 종이책, 종이신문, TV, 라디오 등 어느 것 하나 물질성과 결합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뉴스 산업이 성장한 이면에는 가치 실현이 쉽지 않은 콘텐츠, 지식을 물질성이 전제된 미디어와의 결합이 전제돼있었다. 뉴스라는 콘텐츠를 물질성(물리적 층위) 위에 올려놓고, 나름의 프로토콜(논리적 레이어)을 통해 결합방식, 배열 방식으로 조정함으로써 가치의 생성을 유인했다. 뉴스의 상품화는 결국 물질성과 흡착된 미디어를 상품화함으로써 수익의 확대를 도모할 수 있었다. 3가지 층위가 결합된 미디어는 물질성이 지닌 희소성으로 인해 다양한 부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것이 미디어 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종이로부터 분리된 시점부터 뉴스의 상품화는 난관에 부딪혔다. 광고 수익은 급전직하했고 부가수입도 떨어졌다. 디지털 수익은 종이신문을 찍어낼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작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문닫는 언론사도 속출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뉴스의 황금시대는 뉴스가 신문과 흡착돼있을 때였다. 벤클러식 접근법을 취하면, 미디어의 3가지 레이어가 결합돼 유기적인 가치를 발휘할 때 수익이 가장 높았다. 그러다 뉴스가 물질성과 분리되면서 뉴스 생산자들의 보릿고개가 시작된 것이다.
단순한 해법은 뉴스가 다시 물질성과 결합하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그 물질성에 대한 제어권이 뉴스 생산자 집단에 귀속돼야 한다. 스마트폰이나 AI 스피커의 제어권은 뉴스 생산자 집단에 주어지지 않는다. 뉴스가 결합될 수 있는 훌륭한 물리적 하부구조이지만 그 안에서 뉴스는 선택적이고 기생적이다. 따라서 가치 실현, 즉 대규모의 수익을 창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책과의 음악의 재물질화
잠시 애플의 사례를 살펴보자. 애플은 콘텐츠와 물질성의 결합을 포기한 적이 없다. 음악의 탈물질화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애플은 아이팟 등으로 재물질화를 실행했다. 음반에서 뛰쳐나간 음원을 다시금 아이팟 등으로 재결합시면서 독창적인 논리적 레이어로 서비스를 재구성했다. 애플 수익의 절대분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하드웨어에서 만들어진다. 삼성을 능가하는 수익률도 하드웨어에서 비롯된다. 가치 실현이 어려운 비트화 된 음원보다 이를 물질성을 갖춘 미디어와 결합시킴으로써 수익성을 높여온 것이다.
책도 다르지 않다. 국내에선 리디북스의 페이퍼가 적합한 사례에 해당한다. 책 시장은 디지털화하는 시점부터 침체의 계곡에 빠졌다. 이북리더는 종이에서 분리된 책의 내용을 아이팟처럼 다시 회수함으로써, 결합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에서 등장했다. 책이 머무르던 종이와 책이 머무르고 있는 이북리더는 논리적 레이어에서 전혀 다른 차별성을 갖게 됐다. 종이책의 논리적 질서는 이북리더에서 소프트웨어(펌웨어 등)으로 대체됐다. 이 소프트웨어는 기존 종이책에 선사하지 못했던 다양한 서비스를 실현하도록 도와준다.
구글, 페이스북 등이 하드웨어 사업에 손을 내미는 배경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하드웨어 자체를 팔려는 목적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콘텐츠, 논리 레이어와 결합된 하드웨어를 통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으로 바라봐야 한다. ‘소프트웨어가 돈이 된다’, ‘콘텐츠가 돈이 된다’ 등의 논리는 미디어의 3층 레이어 구조를 간과한 명제들이다. 미디어는 콘텐츠+소프트웨어+하드웨어의 결합관계 속에서 수익의 규모와 범위가 확정된다.
뉴스의 재물질화와 디바이스의 역할
여기서부터는 다음 [2화]에 적어두겠습니다.
참고 문헌
- 백욱인. (2010). 디지털 복제 시대의 지식, 미디어, 정보. 한국언론정보학보, 5-19.
- Benkler, Y. (2000). From consumers to users: Shifting the deeper structures of regulation toward sustainable commons and user access. Federal Communications Law Journal, 52(3), 561∼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