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기사엔 판정 결과 꼭 포함돼야 할까
코로나19로 허위정보들이 곳곳에서 쏟아지면서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팩트체크 코너를 운영하는 것을 넘어 전담 팀을 꾸린 언론사도 적잖습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허위정보를 걸러내고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이 건강한 삶의 방식을 찾도록 돕는 것은 저널리즘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사들이 저마다 내놓은 팩트체크 기사의 유형과 포맷이 달라서 기존 기사와 차별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상시적으로 생산되는 취재 기사와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팩트체크라는 머릿말을 달고 포털 등으로 전송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팩트체크 기사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국내 언론사 내 합의된 무언가가 없기에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됐습니다.
이 글은 팩트체크 기사 포맷의 획일성을 논의히자는 것은 아닙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기존 전통 저널리즘의 기사 유형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나 조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내놓으려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산하는 팩트체크 기사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금 숙의해보자는 의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어떠한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부터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역사
팩트체크는 다분히 미국적인 저널리즘 조류입니다. 그것의 시작은 대부분 미국 언론사로부터 비롯됐습니다. 독일의 슈피겔이 강력한 팩트체크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팩트체크는 미국 저널리즘 문화의 산물입니다.
These days, journalistic practices aren’t necessarily country-specific — Der Spiegel, for example, is known for having one of the world’s biggest fact-checking departments — but that wasn’t the case a century ago, and this particular kind of checking was an especially American phenomenon.
팩트체크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적 팩트체크와 외부적 팩트체크로 구분해 역사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정은령, 2019, p.55). 내부적 팩트체크는 뉴스의 생산 과정으로서 내부적으로 팩트를 체크하는 작업 혹은 조직을 의미합니다. 국내에선 과거 조사부가 그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반면 외부적 팩트체크는 팩트체크의 결과를 기사의 형태로 생산, 표현하는 작업을 뜻합니다. 현재 우리가 기사로서 접하고 있는 팩트체크는 외부적 팩트체크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내부적 팩트체크
- 1913년 : 퓰리처의 뉴욕월드 ‘Bureau of Accuracy and Fair Play‘ 운영
- 1923년 : 최초의 팩트체커 ‘낸시 포드’(Nancy Ford) 타임에 고용
- 1938년 : Colliers에 처음으로 팩트체커라는 단어 등장
- 1996년 : 뉴스위크 팩트체커 직무 중단 및 해체
- 1997년 : 포브스 팩트체크 부서 해체
외부적 팩트체크
- 1980년대 : 미국 대선 기만적 광고 횡행과 기자들의 자각
- 1994년 : 팩트체킹을 주 기능으로 하는 Snope.com 출범
- 2003년 : 이라크 침공으로 미 정치인 발언에 대한 불신
- 2003년 : FactCheck.org 출범
- 2006년 : 뉴스트러스트 개시
- 2007년 :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 개시
- 2007년 : PolitiFact 출범
- 2015년 : 포인터연구소 산하 IFCN 출범
외부적 팩트체크(이후부터는 팩트체크)가 싹을 틔우기 시작한 건 1980년대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마이클 돕스(Michael, 2012)의 회고를 보면, 1980년 미국 대선 당시 로널드 레이건이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불을 지폈습니다. 당시 레이건은 대선 운동 기간 동안 “자동차나 공장이 발생시키는 공해보다 나무가 4배나 더 많이 공기를 오염시킨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너무도 공공연히 거짓 증언을 캠페인 광고 등에 동원한 탓에 기자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팩트체킹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미국 기자들은 이후 대선이 치러질 때마다 대선 후보들이 광고 등으로 내뱉는 발언들을 검증하기 위해 팩트체크를 시도했는데요. 이러한 저널리즘의 조류가 누적돼 팩트체크 저널리즘으로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특히 2003년 3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즈음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둘러싼 수많은 정치인들의 거짓 증언들이 쏟아졌고 이때부터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미국 언론사를 중심으로 본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2004년은 미국 대통령(부시-케리) 선거가 있는 해였습니다. 이라크 침공 이후 치러지는 첫 번째 대선인 만큼 정치인들의 검증되지 않은 발언들이 터져나오기 적절한 시점이었죠. FactCheck.org의 창업자인 Brooks Jackson도 이 조직의 출범 배경을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대선을 전후해 난무하는 정치인들의 거짓된 발언과 증언을 검증하고 걸러내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리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 팩트체크 저널리즘입니다.
외부적 팩트체크 기사의 양식(포맷)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발언 검증을 위해 시작된 저널리즘 유형인 만큼 그것의 보도 양식 또한 차별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먼저 외부적 팩트체크 기사의 유형과 포맷을 주도했던 factcheck.org의 기사 구성부터 보겠습니다. 창립 초기인 2003년 12월2일, 브룩스 잭슨이 작성한 팩트체크 기사 ‘에드워즈의 거짓 광고는 세금이 증가했다고 주장했다’를 보면, 요약-분석-미디어-지지 문서-출처 순으로 쓰여 있습니다. 검증한 내용의 판정 결과는 제목과 요약 부분에서 어느 정도 확인을 할 수 있고요, 대부분의 검증 과정은 분석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factcheck.org 기사의 특징이라면 한편의 논문을 보는 듯, 투명하고 철저한 출처 소개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기사의 전개 방식이 많이 유연해졌지만 출처의 투명하고 철저한 공개는 여전히 중요한 원칙으로 고수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만 ‘Truth-O–Meter’와 같은 판정 지표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 칼럼은 어땠을까요? 2007년 워싱턴포스트의 초기 ‘팩트체커’ 칼럼부터 볼까요? 워싱턴포스트 에디터(아마도 마이클 돕스나 글렌 케슬러)가 함께 작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가 2007년 9월20일 작성한 이 팩트체커 칼럼은 먼저 검증 대상이 될 주장부터 열거를 합니다.
“반전단체인 Moveon.org은 9월10일자 뉴욕타임스 전면광고를 통해 ‘팩트를 가지고 현재 계속 전쟁 중’이라고 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을 고발했다. 페트레이어스 장군에 대한 MoveOn.org의 주장에 주석을 달아 팩트체크를 했다.”
먼저 광고에 인용된 문구를 하나하나 검증하며 사실 여부를 따졌습니다. 각종 소스를 인용하고 링크를 걸었습니다. 제시된 각종 통계들의 사실도 검증했고요. 그런 뒤 가장 마지막에 피노키오 점수를 제시합니다. “~이유로 무브온의 광고에 대해서는 3개의 피노키오를 부여한다”라고.
‘검증하고자 하는 대상의 주장(Claim) – 검증(Verification) – 평가(Judge)’라는 구조입니다. 이어진 칼럼에서도 이러한 구성 방식은 크게 변화는 없었습니다.
FactCheck.org가 출범한 지 약 4년 뒤부터 시작된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 칼럼은 포맷 부문에서 진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팩트체크 판정 결과를 피노키오 지표로 시각화함으로써 판정 결과에 대한 독자들의 직관적인 이해와 인식을 도왔습니다. 같은 해 출범한 폴리티팩트의 Truth–O–Meter와 함께 판정 결과의 구분과 시각화는 팩트체크 기사의 기본 요건으로 서서히 정착이 되는 계기를 맞게 됩니다.
판정 결과 제시는 외부적 팩트체크의 자연스러운 결과
앞서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짧은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판정 결과의 제시는 팩트체크 기사의 자연스러운 포맷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0년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반복해왔던 거짓 발언과 광고를 미국 언론사들이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확산함으로써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해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적 자체가 무분별한 따옴표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정치인의 발언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검증하는데 있었습니다. 판정 결과를 명확히 함으로써, 무분별한 인용 보도가 가져온 ‘거짓의 확산’을 방지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 이후 몇 차례의 대선과 이라크 침공 등을 거치면서 정치인들의 거짓 발언은 방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급기야 저널리즘은 피노키오 또는 Truth-O-Meter와 같은 판정 지표를 개발해 내놓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기계적 객관주의 관행과는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판정도 기자의 의견일 뿐 아니라 주관의 개입일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이를 코딩턴 등은 아래와 같이 반박합니다.
“전통 저널리즘의 인용을 직업적 객관주의, 팩트체크 기고나의 검증을 과학적 객관주의로 정의하며 전문 팩트체크 기관은 검증 과정에서의 투명성, 검증에서의 반복 가능성 등을 강조함으로써 저널리즘 객관주의 관행을 따르고 있다.”(이나연, 2018, 재인용)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으로, 오히려 재현가능성을 강조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언론에 드리는 글 '판정에 도전하라'
모든 팩트체크 기사가 동일한 포맷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나라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등장한 배경이나 맥락이 다르니 해결하려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모든 팩트체크 기사가 판정 결과를 제시해야 할 의무나 강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사들이 팩트체크를 강조하고 유행처럼 생산하게 된 배경은 미국의 상황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정치인 발언의 검증 없는 받아쓰기, 비판을 위한 익명 정보원의 인용 등 저품질 저널리즘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언론으로부터 차용한 형식이기도 합니다.
특히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하는 ‘따옴표 저널리즘' 문제, 그리고 그 발언에 내재된 거짓 정보를 재유통해 온 언론의 부정적 역할 등을 고려하면, 직업적 객관주의에 안주하며 판정 결과의 제시를 등한시 하는 건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애초 도입된 맥락과 다르며, 효율적인 해법도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판정 제시의 형식, 구분선, 시각화 등을 진화시키며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것이 취지나 신뢰 회복 측면에서 합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외부적 팩트체크라는 미국 저널리즘의 형식, 관행, 전통을 국내 언론사는 이미 받아들였고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직업적 객관주의 관행을 벗어던지지 않는 조건 안에서 이 형식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팩트체크 기사에 적잖은 익명 정보원 등장하고, 판정 결과도 내리지 않으며, 출처와 근거의 엄밀성도 명시하지 않는 팩트체크 기사 유형이 상당히 많습니다.
극복하려는 대상으로서의 저널리즘 관행(직업적 객관주의)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의 저널리즘 관행(과학적 객관주의)이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 모습으로 팩트체크의 이름을 달고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미국식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보도 유형을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겠지만, 부디 과거 저널리즘 관행과의 과감한 이별에 도전해보시길 감히 바라봅니다.
참고문헌
- 이나연. (2018). 한국 언론의 팩트체크: 19 대 대통령선거에서의 후보자 검증 기사를 중심으로. 언론정보연구, 55(4), 99-138.
- 정은령. (2019). 팩트체크 뉴스와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신뢰 회복: 방송 기자들의 팩트체크 뉴스 양식과 뉴스가치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방송문화연구, 31(1), 47-101.
- MERRILL FABRY. (2017.8.24.). Here’s How the First Fact-Checkers Were Able to Do Their Jobs Before the Internet. TIME.
- Michael Dobbs. (2012). The Rise of PoliticalFact-checking. Media Policy Initi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