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인쇄와 전산 사식

아래 글은 국립국어연구원이 1987년 발간한 국어생활3권 11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CTS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글이라고 보고 여기에 옮겨붙여뒀습니다. 검색 결과 HWP 파일로 옮겨놓은 원고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검색어는 '인쇄와 전산 사식'입니다. 참고로 김성익 실장은 1979년 한국일보 장재구 대표가 전산사식기 개발팀을 구성할 때 김창만, 오동호를 이끌고 전산사식기 개발을 주도했던 당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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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와 전산 사식

김 성 익(한국일보 전산 개발실장)

인쇄술하면 우리의 15세기 중엽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를 떠올린다. 그가 시작한 금속 활자를 이용한 활판 인쇄술이 서구의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당시 구텐베르크의 업적은 금속 활자의 구조에서 인쇄기, 그리고 잉크에 이르는 활판 인쇄술의 전 공정을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이미 고려 고종 때에 금속 활자로 인쇄한 사실로 미루어 서구보다 200년이나 앞서서 금속 활자를 발명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상의 슬기를 이어받아 이를 보다 실용적인 것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후손을 못내 아쉬워하며 이 글을 쓴다.

500여 년 전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술인, 국자로 끊는 납을 부어 만들던 자모는 오늘날에는 주식기라는 기기로 자동 생산되도록 발전하였고, 덜거덕거리며 한 장 한 장 손으로 잉크를 칠하며 찍어내던 인쇄기는 고속 윤전기로 발전하였으나 인쇄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문선, 조판 및 정판은 500년 전의 활판 인쇄술과 별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가 없다. 이는 부분적인 기기의 발전은 있었으나 인쇄술 전반적인 공정에는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의미로서, 500년 전의 인쇄 산업이 상당히 발달된 당시의 첨단 산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공 위성이 달나라를 다녀오며 로봇이 인력을 대신하고 다이얼만 돌리면 지구 건너편의 사람과 대화를 하고 TV의 브라운관을 통해 세상 구석구석을 한자리에 앉아 볼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대단히 낙후된 산업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반면에 인쇄 그 자체는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며 더욱더 필요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컴퓨터를 이용한 전산 사진 식자기의 출현은 시대적인 당연한 요청으로 생각된다.

인쇄술은 크게 활판 인쇄와 옵셋 인쇄로 분류하는데 현재 인쇄업계의 시설을 비교하여 보면 국내의 경우 아직도 활판 시설이 많으며, 세계적으로는 옵셋 방식이 약간 우위에 있으며 점차적으로 옵셋 방식으로 바뀌어 가는 경향이다. 수동식으로 사진 식자를 하던 시대에는 고급 인쇄 및 COLOR를 요하는 특수물에만 활용하였으므로 상대적으로 활판 방식이 대종을 이루었으나 컴퓨터가 이용된 전산 사진 식자기의 출현 후부터는 제작이 용이하고 제작 원가가 낮은 옵셋 시설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문선 조판 방식의 활판 인쇄와 사진 식자 방식의 옵셋 인쇄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보면 활판 방식은 납으로 된 자모를 한 자 한 자 채자를 하여 간단한 형식의 조판물을 만들고 이것을 한데 모아 편집자가 요구하는 모양의 페이지물로 만드는 정판 과정을 거쳐 지형을 뜨고 다시 납을 부어 활판을 만든 후 인쇄하는 반면, 옵셋 방식은 글자를 한 자씩 사진을 찍으며 간단한 형식의 조판물을 만들어 이것을 편집자가 요구하는 양식으로 오려 붙여 전체를 촬영한 후 평판을 만들어 인쇄하는 것이다. 전자는 열에 의해 납을 녹여서 이루어지는 작업으로 HTS(Hot Type System)라 하고 후자는 열과 관계없이 사진 현상에 의해 이루어짐으로 CTS(Cold Type System)라 하는데 근래에는 컴퓨터가 후자에 활용되면서(전산 사식)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라 한다. 전산 사진 식자 방식은 글자를 한 자씩 사진으로 찍던 과정 대신에 W. P.(Word Processor)를 이용하여 원고를 작성하면 간단한 형식의 조판물 내지는 작가가 요구하는 간단한 양식의 페이지물까지 필름이나 인화지에 문선 조판할 수 있다. 또 기종에 따라 복잡한 페이지물까지 컴퓨터가 자동으로 식자하여 주기 때문에 이는 인쇄술에 있어 500여 년만의 혁명으로 일컬어진다.

활판 인쇄와 전산 사식을 이용한 옵셧 인쇄를 비교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원고 작성에 있어서의 편리성

작가가 원고를 작성하는데 있어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보다 WP를 이용할 경우 오자의 수정, 필요한 문구의 삽입, 필요 없는 부분의 삭제 등 그 편리함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글을 많이 쓰는 분에게는 WP를 이용할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

2)문선·조판 과정의 기계화

문선 조판 과정을 컴퓨터가 대행하여 주며 전산 사식기 한 대가 문선공 200명분의 능력을 발휘하는 점과 기계로서의 정확성 등은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3)생산 원가 절감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될수록 생산은 기계에 의존하고 인력은 점차 고급화되는 현상을 우리는 주변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인쇄술에 있어 문선 조판 나아가 정판까지의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전근대적인 공정은 오늘날과 같이 과학 문명의 사회에서는 매우 낙후된 기술로, 이를 기계화하여 단위 생산력을 높임으로써 원가 절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4)작업 환경 개선

자모를 만드는 주식 과정, 문선 조판 과정, 정판 과정, 지형을 가지고 활판을 만드는 과정, 인쇄 과정 등 인쇄의 전 과정에서 납을 취급함으로 납으로 인한 근로자의 인체에 끼치는 공해는 매우 심각하였다. 그러나 옵셋 방식으로 바뀌면서 공해로부터 완전히 해방됨과 아울러 인쇄 공정에서, 문선에서 정판까지의 작업 환경이 공장이라는 분위기를 자아냈으나, 장래에는 첨단 과학인 컴퓨터의 터미널이 설치되어 있는 초현대식 시설의 분위기로 작업 환경이 개선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5)인쇄 효과

옵셋 인쇄가 활판 인쇄보다 인쇄질이 매우 선명하고 깨끗하며 COLOR화 된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이상의 장점 외에도 많은 요인이 있겠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필자가 국내에서 CTS를 개발하고 활용하는데 있어 경험하였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일보사에서는 1979년 2월에 CTS식 개발팀이 구성되어 그 해 10월 9일 한글날을 기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한글 전용 전산 사진 식자기를 개발하여 일반에게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뜻 있는 분들로 하여금 많은 찬사와 격려를 받고 내심 보람과 긍지를 느꼈으나, 실제로 국내 인쇄업계에 보급하려고 하니 한자를 처리할 수 없어서 안 된다는 이유로 외면을 당할 때 그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후로 영국 제품인 LINO 202를 이용하여 한글 한자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전산 사진 식자기를 1983년에 발표하였을 때는 명조, 고딕 각각 한 개의 서체밖에 없으므로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는 문제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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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보다 200년이나 앞선 우리의 금속 활자가 오늘날 그들로부터 배우게 된 것은 많은 자종이 가장 큰 요인으로 판단된다. 영어의 경우 알파벳 대·소문자, 숫자, 약물(부호 및 기호)을 합하여 100여 자면 충분하겠으나, 우리의 경우 한글 2,500자 한자 5,000여 자 약물 500여 자 합하여 8,000여 자 정도의 자모가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수요자가 요구하는 다양한 서체에까지 영향을 미쳐 10가지 서체만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영어 1,000여 자에 비해 우리는 80,000여 자가 되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다음으로는 편집 양식이다. 서구의 경우 가로쓰기 방식 하나인데 우리의 경우는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두 가지이고, 한자를 사용하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데 우리만이 띄어쓰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문자 생활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것이 기계화하는데 많은 어려움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인쇄는 인쇄를 전문으로 하는 공장에서만 이루어지던 시대는 지났다. 인쇄 공장은 대량의 인쇄물만을 취급하는 몇몇의 대단위 공장으로 족하며 기타 인쇄물은 사무실에서 나아가 가정에서 제작이 이루어지는 때가 아주 가까운 장래에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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