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시대, 그래도 기자는 필요하다

허버트 갠즈 교수라고 아시나요? 아마 번역서라곤 '저널리즘, 민주주의에 약인가 독인가' 정도밖에 없어서 모르시는 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에선 자주 언급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현재 콜롬비아 대학 교수로 계시죠.

며칠전 하버드 니먼랩과 인터뷰를 했더랬습니다. 시민저널리즘에 대한 언급도 있고 소셜미디어 시대 기자의 역할에 대한 코멘트도 있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시민기자 시대, 그래도 필요한 저널리스트 역할

그는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에 대해 항상 깊이 고민해왔던 분입니다. 여전히 그 관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각 또한 현재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 저널리스트란 뭐고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요. 답을 들어볼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게 있다. 평범한 시민은 저널리스트나 미디어 연구자들만큼 동일한 관심을 뉴스에 쏟지 않는다. 그것이 페이스북 개인화 뉴스건 아니면 tv 네트워크의 프로페셔널 뉴스건 상관 없다.(One must always remember that ordinary people do not pay the same kind of attention to news as do journalists and media researchers, whether it is Facebook’s personal news or the TV networks’ professional news.)"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로 직접 뉴스를 생산하는 시민기자들이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기자들만큼 뉴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룹은 없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은 생업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경험을 글과 영상, 사진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지 기자들처럼 오로지 뉴스 생산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는 의미죠. 바로 이 지점에 저널리스트들의 역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위기는 뉴스룸이지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이어갑니다.

"변화한 것은 뉴스룸이지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뉴스룸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지 저널리스트의 위기가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뉴스룸은 더욱 다양한 뉴스를 수용할 수 있는 도전적 상황에 직면해있습니다. 뉴스룸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뉴스 플랫폼이 등장하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의 위기는 아니라는 것이죠. 감히 제가 덧붙이자면, 관성적, 샐러리맨형 저널리스트의 위기이긴 하지만 저널리스트 그 자체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가 뭐냐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텐데요. 갠즈 교수는 '대의적 기자' 모델을 다시 강조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의원처럼 선출된 대표는 아니지만 시민의 목소리를 대의해줄 수 있는 역할로서 기자 모델을 상정한 것이죠.

이 같은 맥락에서 기자들의 구성 또한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소득 엘리트 계층의 독점 영역이 되고 있는 기자 직군이 좀더 다양한 계층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충분히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기자의 계층 구성 더 다양해져야 한다

한국에선 더욱 절실한 부분입니다. 미국보다 한국은 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학력 고소득 계층 출신들이 메이저 언론사 기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저소득층의 고민과 고충, 이슈들은 먼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과 관련된 토픽이 뉴스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들이 더 높습니다. 당연히 이슈의 필터링이 이뤄지면서 저소득층의 목소리는 대변되지 않거나 다뤄지지 않습니다. 공론화도 어렵습니다.

그 역할을 지금 시민기자들이 차근차근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성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는 것이죠. 생업을 포기하고 뉴스 생산에 전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저널리스트의 존재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고 봅니다. 지금도 유효한 역할이라는 것이죠.

지금부터는 다음 인터뷰 꼭지를 읽어봐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 교수님은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더 학습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시민 뉴스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왔다. 시민저널리즘 운동 그리고 하이퍼로컬 뉴스가 이 같은 시민 뉴스의 비전에 부합할 수 있는 영영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허버트 갠즈 : 저널리스트들은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할 수 있거나 혹은 선출된 대표가 시민들을 위해 해왔고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반대로 선출된 대표들은 그들의 유권자들 특히 침묵하고 있는 유권자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만 한다.
시민 뉴스와 같은 것을 더 많이 보도하면 시민들이 정치적 프로세스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될 것이고 시민들이 시민 운동에 더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뉴스는 전문 저널리스트들에게 늘 비중이 낮았기 때문에 시민저널리즘 운동이나 로컬 뉴스의 지지자들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질문 : 교수님은 '다원적 뉴스'(Multiperspectival news)를 1979년에 정의한 바 있다. 최근 들어 다시 그 개념을 불러오고 있다. 우릴 위해서 다시 설명해줄 수 있나. 그리고 왜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말씀해달라. 전통적인 뉴스 아울렛이 도전적 상황에 직명한 지금에도 유효한가?
갠즈 : 내가 처음 연구를 수행했을 때, 전국 뉴스는 대부분이 단일 시각만 전달하는 뉴스로 제한돼있었다. 때때로 나는 '속기 뉴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소 과도하게 단순화시킨 것인지는 몰라도, 당시 전국 뉴스는 정부 공무원 등 권위있는 취재원이 말한 것을 받아적는 보도에 그쳤다. 아니면 민주당이나 공화당 관계자들이 주장한 것을 담는 것에 불과했다.
다원주의적 뉴스 보도는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전체 뉴스 오디언스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오디언스들이 포진해있는데 이들에게 뉴스 가치가 있는 주제의 뉴스를 찾는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시민들을 포함한 다른 뉴스 취재원으로부터 뉴스를 만들어오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관점을 보도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예를 들어보겠다. 저소득층의 오디언스는 다른 사람들처럼 비즈니스 뉴스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주식 투자나 뉴스 가치가 있는 기업의 주요 인물들의 합법 비합법 행위에 대한 게 아니다. 그들은 숍을 낼 수 있는 방법이나 그들 자신을 고용할 수 있는 누군가에 대한 것, 무직 상태이 때 도움이 되는 공공 기관에 대한 뉴스를 필요로 한다.
요즘, 케이블 뉴스와 인터넷 덕분에, 이전보다 뉴스가 더욱 다원화된 것은 맞다. 그러나 전통적인 뉴스보다 여전히 더 적은 규모의 뉴스 오디언스에게만 전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