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디지털 디퍼런스를 읽고
양극화 성향
-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는 공통성, 공유된 이해, 그리고 공동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한다. 더욱이 커뮤니케이션은 흔히 갈등에 대한 선호되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며, 따라서 갈등은 커뮤니케이션 실패에서 비롯된다.
- 새롭게 탄생한 커뮤니케이션 연구 분야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그 이후에 민족적 편견과 유혈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선전의 나쁜 효과에 대한 우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268)
사회적 정체성의 중심 개념
- 중요한 것은 더욱더 복잡하고 다양한 말과 이미지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 주의하는 쪽을 선택하느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답할 때 일반화할 수 있는 핵심적인 분석적 개념으로 사회적 동일시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270)
- 그것은 국민주의적이거나 인종차별적인 선전이 수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의 중심에 있다. 따라서 내집단과의 사회적 동일시는 외집단을 향한 편견 및 혐오감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대비를 이룬다. (270)
- 인류가 타인의 기분과 동기에 주의를 기울이며 빠르게 귀인을 하는 특별히 사회적인 동물을 대표한다는 것은 진화론 전통에서 널리 관찰된다. 협력 및 협업 기술은 특별히 강하거나, 빠르거나, 자기-방어나 공격을 위한 타고난 독특한 신체적 특성을 가지지 못한 종의 생존에 특히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271)
- 진화된 인간의 인지 체계가 사회적 동일시와 양극화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명제는 역사적 뿌리가 무엇이든 간에 엄격한 경험적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 (271)
사회적 동일시의 심리학
- 협력적인 활동은 그러한 경쟁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그러한 경쟁이 적절한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게 했다. 양극화를 향한 충동적 욕구는 당연하지만 문제는 사회적 상호작용 구조이다. (275)
1) 인간은 익숙함을 추구한다
- 익숙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수용자 행동과 미디어 경제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역학일 것이다.(276)
- 우리의 목적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자연스럽고 기능적인 이러한 인지적 경향이 사회적 동일시, 고정관념화, 그리고 외집단 적대감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연구 결과이다.
- 타지펠과 빌리그는 이러한 부정적인 나선 효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연구 대상자들이 내집단과 외집단 판단에 더 자신감을 갖게 되고 더 극성을 띠게 된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278)
- 아주 가까운 서클 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잘 아는 사람과 축소된 상호작용을 하고, 의견을 달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는 접촉을 줄이는 증가된 사회적 누에고치화(social cocooning)에 대한 추측도 존재한다. (278)
2) 인간은 정체성 강화를 추구한다
- 사람들은 긍정적인 자기-개념(self-concept)을 열망하며, 자기존중감(self-esteem)의 유지와 연관된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는 자기평가와 자신의 1차 동일시 집단에 대한 평가의 체계적 편향으로 이어진다.(279)
-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적 발전은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지펠과 동료들의 연구와 관련이 있으며, 사회적 정체성 이론을 나타내는 약어인 SIT로 알려져 있다.
- 주목할 만하고 자주 인용되는 역사적 분석 가운데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가 있다. 이 책에서 앤더슨은 자국어로 된 인쇄물의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한 인쇄 자본주의 시장 동기화가 어쩌면 우연히 서서히 발전하고 있는 국민-국가에서 공유되는 아이디어와 관점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강한 국민주의와 국민 공동체 의식으로 이어졌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281)
3) 인간은 범주적 발견법에 상당히 의존한다.
- 편견에 사로잡힌 사고의 유해성에 대해 인간에게 아주 준엄하게 훈계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일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인지적 역학이 작동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하는 것과 어떤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사회 조직 구조가 사회적 범주에 대한 일반화의 기능적 측면은 촉진하고 역기능적인 측면은 비켜가게 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281)
- 리프먼의 생각에 고정관념은 민족적 편견이 아닌 복잡한 실제 세계를 어쩔 수 없이 단순화해서 개념화한 것을 가리키는 비료적 중립적인 개념이었다.(282)
- 그들이 제안하는 권위주의 이론의 핵심은 분명 척도 항목, 특히 관습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 공격성, 미신, 그리고 강인성과 같은 특성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284)
- 올포트('편견의 속성' 저자)는 왜곡된 공적 허구나 성격 이사이 아닌 고정관념화의 뿌리가 범주화와 추상화라는 정상적인 인지 기능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그것을 예단의 정상성(normality of prejudgement)이라 불렀다.(285)
"인간의 정신은 반드시 범주의 도움을 받아 생각해야만 한다. 범주들은 일단 생성되면 정상적인 예단의 토대가 된다. 우리는 도저히 이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질서정연한 삶은 그것에 의존한다. 우리의 생각에는 특이한 관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문제를 쉽게 푸는 것을 좋아한다. 만약 재빨리 문제를 어떤 만족스러운 범주로 분류하고 이 범주를 그러한 해결책을 예단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문제를 가장 쉽게 풀 수 있다."(Allport, 1954: 20)
4) 인간의 범주적 발견법은 몹시 차별적인 경향이 있다.
- 개인들은 사회적 정체성을 확증하거나 불확증적인 사실을 피해갈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잡지를 펼쳐보거나 TV를 켜거나, 브라우저를 열어보지는 않는다. 교실과 연수과정 같은 제도적 환경 밖에서 전 세계를 인쇄 미디어와 전자 미디어에 참여하게 하는 핵심적인 동기부여의 역학은 분명하다. (287)
5) 인간은 내재적 즐거움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다
- 미디어 산업 경영진에게 사람들이 미디어 콘텐트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는 대체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상업적인 기업들로 일단 영화표가 판매되었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연관된 광고가 시청 되고 나면 그것으로 거의 끝이 난다. 더욱이 그들이 시청하지 않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고 그들이 시청하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288)
- 이러한 업계 문화와 학계 문헌들 속에 존재하는 특이한 차이의 결과로 인해 우리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어떤 동기에서 책을 읽는지, 라디오 방송을 듣는지, TV를 보는지, 혹은 영화를 보러 가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289)
- 우리는 미디어 행동의 내재적 즐거움이라는 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이론적 출발점을 정말로 가지고 있으며 이는 인간이 익숙한 것 속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290)
- 오락물의 내러티브와 뉴스 기사는 매우 예측 가능한 구조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서부 영화, 살인 미스터리 소설, 텔리비전의 시트콤, 그리고 예를 들어 기업 부패에 대한 뉴스 기사는 주변적인 것만 차이가 있는 특유의 줄거를 가지고 있다. (290-291)
양극화와 매스 커뮤니케이션
- 우리는 이 장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준 네 가지 뿌리 깊은 심리학적 메커니즘과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앞의 네 가지 흥미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것으로 기대하는 다섯 번째 요인을 나열했다.
- 다섯번째 요인의 중요성은 미디어 콘텐트 선택이 엄청나게 확대되고 공중의 주의가 잠재적으로 조각화 될 수 있는 세계에서 부족적인 것(the tribal)의 강화는 하나의 분명한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291)
- 실제 가족적 부족들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주요한 기초였을 때 이웃과의 갈등을 피하는 한 가지 특별한 유용한 기법은 그냥 상대에게서 멀어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인간 집단이 유목민이었을 때 이것은 특히 적절했다. (292)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
- 첫번째로 역사 발전을 촉진한 것은 특히 자국어로 된 책이었다. 앤더슨은 현대적인 인쇄기가 (재)발명된 지 첫 50년 이내에 200만 부의 책이 유럽에서 출판되었음에 주목했다. 그때까지는 교회가 도전자들보다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라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단과의 싸움에서 쉽게 이겼다.(294)
- 이와 관련한 현 시대의 질문은 수용자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현대 '방송 자본주의'가 우연히 그리고 어쩌면 심지어 충동적으로 그러한 문화적 단층선(헌팅턴이 말한)을 강화하는지 여부이다. 북미와 유럽의 미디어가 아랍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다는 수용자의 기대를 강화하고 있고 아랍의 미디어 역시 그 반대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하다.(295)
양극화에 대한 보정?
- 문화에서 유래된 적절한 행동에 대한 규범과 그러한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의 충동 사이의 긴장은 첫 부족들의 존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물론 죄도 사회규범의 위반이며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런 죄를 짓는 부족 구성원을 볼 수 있는가?(295)
- 이러한 권위 있는 체계들이 실제로 인간의 행동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데 성공적인지 여부는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좌절감을 느낄 정도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296)
- 따라서 우리는 다른 집단과 내집단을 구별하려고 하는 인간의 성향에 균형을 잡아주려는 노력은 극도로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이 단계에서 이러한 깊이 뿌리박힌 심리적 역학들을 감안할 때 큰 성공을 거둘 것 같지 않은 세 가지 보정 전략을 검토해 볼 수 있다.(295-296)
- 회피 : 우리는 커뮤니케이션과 운송의 전 세계적인 흐름과 진정으로 세계화된 경제 체계로 인해 과거의 회피 전략은 실용성이 없으며 비현실적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오늘날 에디는 무선 문자 메시지로 교실 반대편에 있는 빌리를 도발하거나 그 일로 다른 교실 심지어 다른 학교에 있는 빌리를 도발할 수도 있다.(297)
- 단순 금지 : 위의 논의가 시사하듯이, 편견을 금하는 것이 추상적으로는 잘 될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의 충동에 어긋나는 도덕적 행동에 관한 많은 명령처럼 단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단순 금지란 법규에 해당하지만 사회적이고도 문화적인 폭넓은 규범적 지지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 제한을 의미한다. (297)
- 검열 : 금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부당한 스피치에 대한 단순한 검열은 이와 같은 복잡한 현상에 대한 신통치 않은 해결책이다.(중략) 그러나 증오 스피치를 검열하려는 이러한 다양한 노력이 성공적임을 보여주는 증거는 거의 없다. 또다시 즉각적으로 전 세계적인 정보 흐름이 이뤄지는 세계에서 그와 같은 검열 시도가 ㅇ러마나 성공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298)
인간의 충동에 대한 보상적인 제도적 대응책
- 협력적 규범 명령 : 단순한 상의하달식 금지는 전망이 밝지 않지만 문화적으로 강화된 규범은 다를 수 있다는 한 문헌의 결론에 의존한다. 핵심은 그러한 규범이 어떻게 분명히 설명되고 그것들이 관련된 사람들과 얼마나 잘 공명을 이루느냐는 것이다.
- 공정성 명령 : 공정성에 대한 지각, 특히 공정성의 부재에 대한 지각은 정치적 지각과 정치적 참여의 근본적인 동인으로 밝혀졌다. 불공정함, 규칙의 불공평한 적용, 혹은 불공평한 보상에 대한 강한 정서적 반응은 어린이, 심지어 동물에게서 일관되게 때로는 극적으로 나타난다. (중략) 객관적인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적 공중의 반응은 충분히 합리적이며 장기적으로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특히 흥미로운 특별한 경우는 왜곡된 커뮤니케이션과 오지각으로 인해 불공정성을 잘못 인식하거나 과장되게 인식하는 것이다. (300)
- 익숙함 명령 : 울포트는 그가 편견에 사로잡힌 태도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높이기 위한 최적의 조건으로 본 것, 특히 집단들이 동등한 지위에 있어야 하고, 공동의 목적을 추구해야 하며, 접촉의 맥락을 문화적으로 규범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열거했다. 50여 년 간의 연구와 500편 이상의 다양한 연구에 대한 메타 분석은 외집단에 대한 증가된 지식과 외집단과의 익숙함이 편견과 혐오감을 줄여준다는 명제를 지지하는 일관되고도 통계적으로 강력한 증거를 보여준다. 이러한 접촉 효과를 향상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집단 간 접촉이 동등하거나 거의 동등한 지위 조건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301)
양극화와 다원주의
- 판단은 빠르게 하고 용서는 한다 하더라도 천천히 하려는 충동은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302)
- 다원주의라는 용어는 20세기 후반 정치학과 정치 사회학에서 많이 사용됐으며 립셋, 달, 그리고 린드블롬의 연구와 연관되어 있다. 생산적인 분석과 제도적 수준의 분석 모두에 대한 주목을 요구한다. 다원주의라는 용어 그리고 이 용어와 연관된 연구와 이론화는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큰 주목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