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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부정·감시' 저널리즘 가치들, 수용자 지지 못 받는 이유

'비판·부정·감시' 저널리즘 가치들, 수용자 지지 못 받는 이유

'기자로서 나는 좋은 기사를 썼는데 독자들이 외면한다' 이런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현직 기자로 계신 분들 중에도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충분히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메시지도 단단한 그런 류의 기사를 작성했음에도 트래픽은 차치하고라도, 부정적 댓글 세례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죠. 그럴 때마다 독자를 탓하게 되고, 그러면서 독자와의 관계는 더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불일치는 저널리즘의 가치와 역할, 정의 등에 대한 기자 집단과 수용자 집단 간의 괴리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기자 사회가 저널리즘을 재정의하지 않으면 이러한 불일치와 오해는 더욱 커져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사실 이미 편집국 안에서도 저널리즘의 정의를 놓고 서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1980~90년대 미디어 환경에서 구성된 저널리즘의 역할 모델을 그대로 내재화하고 있는 지금의 의사결정 그룹들 그리고 디지털 네이티브 환경에서 달라진 수용자들의 요구를 저널리즘 정의에 반영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주니어 기자들 사이에는 타협조차 쉽지 않은 가치관의 격차가 종종 확인되곤 하더군요. 그만큼 정의와 가치를 상호 조정하기 위한 본질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실 누구 한쪽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을 바라보는 태도, 저널리즘 기본원칙에 대한 시각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죠. 미국저널리즘연구소의 이번 연구(A New Way of Looking at Trust in Media: Do Americans Share Journalism’s Core Values?)가 의미를 갖는 이유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의 저자 톰 로젠스틸이 Executive Director로 버티고 있는 연구소이기에 저널리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는 무척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뉴스의 사회학] 셔드슨이 말하는 저널리즘
#1부-저널리즘의-현주소1부 저널리즘의 현주소04 뉴스의 시작과 발전: 미국 저널리즘의 역사 * 저널리스트들은 스스로를 과학의 권위, 효율성, 진보주의 개혁운동에 부합하는 집단으로 위치 지으면서 동시에 갑자기 나타나 저널리즘 업계 주변에서 유사할 일들을 수행하는 홍보 전문가나 선전가들과 차별화시키고자 했다. (101) * 한 저널리즘 평론가는 1920년에 전쟁 경험을 모델로 만든 ‘선전국’(bureaus of propaganda)이 워싱턴에 거의 1000개가 있었다고 말했다.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이야기됐던 바에 따…

연구 질문에 활용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5가지

이 연구는 수용자들이 저널리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아래 5가지 기본원칙을 제안했습니다. 저마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저널리즘의 원칙이 다를 수 있겠지만 연구진은 아래를 핵심 가치로 분류한 것이죠.

이를 위해 여러 기자 집단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다고 합니다. 모두 20가지의 저널리즘 원칙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가장 동의한다고 응답한 것들만 추려서 5가지 가치를 도출한 것입니다. 20가지 목록은 아래 연구보고서의 74페이지를 참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체화한 5가지 핵심 저널리즘 가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감독/감시(oversight) : 이 가치는 권력자들을 모니터링하고 공직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을 사람이 얼마나 강하게 느끼는가를 주로 측정합니다. 반대 쪽은, 사람들은 리더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신뢰해야 하고, 권위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비공개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프라이버시 보장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 투명성 : 이는 정보가 공개되고 공중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될 때 사회가 더 잘 작동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가치의 다른 측면은 모든 정보가 때론 정당한 맥락 없이는 특별하게 공개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정보가 너무 많으면 일의 진행을 방해하고 심각한 오해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팩트중심주의 : 이는 사람들이 팩트를 더 많이 알수록 진실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반대는 수많은 중요한 것들의 경우, 더 많은 팩트는 단지 현재까지만의 상황을 이해하게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 약자에게 발언권 부여하기 : 이는 사람들이 평소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길 원하는지, 아니면 그것이 지나치다고 보고, 가장 운 나쁜 사람들을 우선하는 게 그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 사회적 비판 : 이 가치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 '문제'에 스포트라이트를 보내는 것보다 옳은 일을 축하하고 좋은 것을 강화하기 위해 '잘하는 것'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를 측정합니다.

'사회 비판' 수용자들로부터 가장 외면받은 저널리즘 가치

아마 다수의 기자들은 위 5개 원칙을 저널리즘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 수용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현재의 신뢰 위기와 결부해서 들여다보시면 더욱 도움이 될 듯합니다.

아래 그래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시피, 팩트중심주의를 제외하면 동의 정도가 50%를 넘지 못합니다. 기자들이 그렇게 숭고하게 지켜오고 있는 저널리즘의 핵심 가치들이 수용자들 입장에선 그렇게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래 수치는 '매우 동의'+'동의'의 응답을 합한 것입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사회 비판'(Social Criticism)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으로서 수용자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투명성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정말 아쉽게 다가오더군요.

전통 저널리즘 원칙 지지 그룹은 가장 적었다(20%)

이 연구는 어떻게 신뢰를 재구축할 수 있을까를 탐색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 수용자들을 저널리즘과 도덕적 가치에 대한 태도에 따라 4개 클러스터로 나누어봤더군요. 아래가 두 가치에 대한 접근 태도에 기준해 나눈 4개 클러스터 그룹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미국 안에서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그룹은 권위와 충성을 도덕적 가치의 우선 순위로 두면서, 저널리즘의 5대 가치에 대해서는 덜 지지하는 집단입니다. 대신 이들은 뉴스를 자주 이용합니다. 다른 클러스터보다는 약간 보수적이라는 특징도 갖고 있죠.

기자들이 가장 바람직한 수용자 그룹(많았으면 하는 수용자 집단)이라고 선망할 '저널리즘 지지자' 그룹은 전체 응답자의 20%로 가장 적었습니다.  심지어 무관심 클러스터보다도 적었습니다. 실망스러울 겁니다. 저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한국도 사정은 거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이 연구가 새롭게 발견한 6개 시사점

1. 저널리즘 원칙 중 하나인 팩트중심주의(Factualism)는 일반적으로 테스트 된 다른 원칙보다 더 많은 공중의 지지를 얻습니다. 그 사회 내 팩트들이 많을수록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은 미국인의 67 %가 완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 비판, 즉 문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지지가 가장 적었습니다 (미국인의 29 %가 이를 지지함).

2. 신뢰의 위기는 사람들의 정치성향(politics)보다는 도덕적 가치에 더 뿌리를 두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이 저널리즘의 핵심 원칙에 대한 유사한 도덕적 가치와 태도를 기반으로 했을 때 4개의 개별 클러스터로 분류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집단 중 단 하나만이 분명히 당파적 - 리버럴, 저널리즘 가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대부분 민주당원인 집단입니다. 다른 세 그룹은 정당 소속과 이데올로기가 혼합돼 있었으며 일부 핵심 저널리즘 원칙에 대해 다양한 정도로 망설이는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3. 우리가 테스트 한 핵심 저널리즘 원칙에 대해 가장 강력한 지지를 보인 미국인 그룹은 가장 소수였습니다. 우리가 '저널리즘 지지자'라고 부르는 이 그룹은 설문 조사에 참여한 10명 중 2 명에 불과합니다. 이 수치는 일부 전통적 기자상을 가진 기자들이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현재까지만 신뢰를 회복하거나 신규 구독자를 확보하는 데에 도달할 것임을 시사합니다.(해석자주 : 향후 같은 과제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 그리고 여러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은 전통적인 저널리즘 가치로 승승장구했던 저널리즘 조직에만 어필할 것입니다.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5가지 도덕적 가치 중 2가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과 공정함입니다. 언론이 그들의 핵심적이고 전문적인 가치로 간주하는 것과 밀접하게 일치하는 가치들입니다. 이 클러스터의 대다수는 뉴스가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83%) 대다수는 뉴스미디어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8 %). 그러나 여기에도 약간의 의구심이 있습니다. 이 클러스터의 절반 미만이 미디어가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고(26%), 1/4만이 그들 같은 사람들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4%). 이 그룹은 또한 네 개의 클러스터 중에서 가장 리버럴합니다.

4. 권위와 충성도를 더 강조하는 사람들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대해 더 회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업홀더(Upholders)라고 부르는 이 사람들은 리더와 그룹에 대한 존중에 높은 가치를 둡니다. 그들은 언론인들이 믿고 있는 일부가 뭔가에 거슬릴 수 있고 공직자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염려합니다. 이 그룹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되는지 대한 더 많은 스토리를 보고 싶어합니다. 업홀더들은 적극적으로 많은 뉴스를 찾고 소비합니다. 그들 대부분(60%)은 또한 그들이 소비하는 뉴스가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언론과 그 가치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33%만이 일반적으로 뉴스 매체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13%)은 더 적습니다 (15%). 이념적으로 지지자들은 보수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균등하게 나뉘어 있습니다(43 %). 또 다른 14 %는 스스로를 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절반은 공화당 원, 10명 중 3명은 민주당원, 10명 중 2명은 소속 정당이 없었습니다.

5. 5가지 도덕적 가치 모두에 깊이 관심을 갖는 또 다른 그룹은 일반적으로 저널리즘 원칙을 지지하지만, 그 지지가 전폭적(unqualified)인 경우입니다. 우리가 도덕주의자(Moralists)라고 부르는 이 그룹은 5가지 도덕적 가치 모두에서 다른 어떤 그룹보다 높은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정치적, 이념적 혼합 그룹으로, 주로 공화당원보다 온건하고 약간 더 민주당원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또한 연령과 인종에 따라 가장 다양한 그룹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도덕주의자들은 뉴스가 믿을 만하고(51 %) 정확하다고 생각하는(74%) 동시에, 이들은 언론에 대해 깊은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10명 중 2명만이 뉴스 미디어가 자신과 같은 사람(20 %)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도덕적(22 %)이라고 생각합니다. 3분의 1만이 언론이 민주주의를 보호한다고 믿고 있었습니(35 %).

6. 이 연구는 또한 기자들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지적합니다. 도덕적 매력을 넓히기 위해 스토리를 재작성하면 모든 그룹의 사람들이 더 흥미를 갖게 됩니다.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더 높거나 또 회의적인 사람들 모두에게) 우리는 몇 가지 기본적인 뉴스 기사를 가져 와서 각각 두 가지 방식으로 작성했습니다. 수정된 버전은 권위 또는 충성의 도덕적 가치를 부각시킨 스토리들, 그것의 다양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리드 문장과 헤드라인을 편집했습니다 (예 : 리더를 호출하거나 지역사회와의 유대 관계를 보여주는). 또 수정된 버전에는 원문에 포함된 프레임 외에도 스토리의 다른 도덕적 앵글을 강조하는 추가 단락을 포함시켰습니다. 대신 다른 모든 측면에선 두 버전은 동일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수정된 스토리가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선거 보안에 대한 수정된 버전의 스토리를 더 균형있게 바라봤습니다 (62% 대 44 %). 더 많은 사람들은 수정된 스토리를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78 % 대 70 %). 그리고 이미 언론을 신뢰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기사가 호소력을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수정됐을 때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7. 구독자를 발굴하기 위해 미디어는 저널리즘이 감시자(watchdog)라는 기존의 호소를 넘어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설문조사를 통해 응답자들에게 지역 언론사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것을 요청하는 여러 메시지를 테스트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사람들의 '도덕적 정향'(moral leaning)이 저널리즘 관련 어떤 종류의 메시지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지에 확실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예를 들어, 배려 나 공정성을 가장 강조하는 사람들은 뉴스 보도를 통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언론사의 약속을 강조하는 메시지에 더 많은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권위와 충성을 강조한 사람들은 지역 사회에 대한 언론사들의 장기적인 봉사에 대한 메시지를 선호했습니다.

[저널리즘과 민주주의 연재 (1)] 민주주의를 위해 저널리즘은 꼭 필요할까?
저널리즘 규범과 강령은 한국 사회, 한국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널리즘 영역에서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전제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을 하겠습니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요소일까요?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기여와 역할을 할 수있을까요? 조금더 좁혀서 한국의 저널리즘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공공재라는 주장과인식은 어떤 근거에서 유효할까요? 지난 4월 한국신문협회는 ’코로나19 극복을 …

미국 수용자만의 인식과 태도로 넘겨버리기엔 이 조사의 함의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미국 수용자보다 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더 낮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여기서 제시된 수치들은 더 부정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용자들은 저널리스트들을 향해 그들의 가치와 정의,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들은 이에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정편향의 감시/비판이 저널리즘의 유일한 덕목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미동의 조짐도 없습니다. 수용자들이 외면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일 겁니다. 문제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것, 그것만으로는 현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확인해왔기 때문일 겁니다.

저널리즘의 가치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기자와 수용자간의 인식차를 인정하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실천들이 동반돼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발점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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