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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서울신문의 미뤄진 민영화와 호반건설 지분 인수

'공기업' 서울신문의 미뤄진 민영화와 호반건설 지분 인수

서울신문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호남 기반의 건설기업인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의 지분 19.4%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6월25일 언론을 통해 공개돼서입니다. 아직 공시는 되지 않았습니다.

19.4%는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 1,614,000주입니다. 호반건설은 이 지분을 전량 인수함으로써 서울신문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겁니다. 사실 의결권 지분으로만 따지면 21.55%를 호반건설이 쥐게 됩니다. 결코 적지 않은 지분량이지만, 서울신문의 경영권을 좌우할 만큼의 위력을 가진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소유구조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죠. 독립화, 민영화 압력이 강해지면 질수록 최대주주 변동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특히 기획재정부의 지분은 어떤 식으로는 변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호반건설 지분 인수의 의미 : 호반건설은 지역민방인 광주방송을 소유한 건설기업입니다. 서울수도권 신문을 인수하기 위해 애를 써왔지만 마땅한 인수 대상을 찾아내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신문 대주주이자 대기업인 포스코와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포스코로선 계륵과도 같은 언론사 지분을 매각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겁니다.

이번 인수‘설’은 민영화라는 키워드 속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맥락 안에서 평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피시, 서울신문은 대표적인 관영(국영?) 신문사입니다. 총독부 기관지로서 굴욕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대표적인 신문사입니다.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건강한 미디어로 위상을 확보했던 몇 년 간의 예외적 기간이 존재하긴 했지만, 관영 언론이라는 역사적 딱지를 떼어놓기엔 역부족입니다.

사실 관영 언론의 출발점은 일본 통감부가 대한매일신보의 지분을 만함에게 70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인수한 1910년으로 되돌아갑니다. 이후 대한매일신보는 매일신보로 제호를 변경하게 되죠. 그리고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와 뉴스룸을 통합합니다.

image 주식회사로 독립한 매일신보의 첫호. 제호의 한자도 변경했다

서울신문이 주식회사로 독립하게 된 건 1938년의 일입니다. 공시 자료에도 “당사는 1938년 4월 28일 설립되었습니다”고 적혀있습니다. 일제가 식민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죠. 주식회사로 분할 때 최대 주주는 조선총독부, 식산은행, 경성일보 등 친총독부 기관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일본인 명망가와 국내 친일 인사 등이 일부 주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쯤되면 서울신문이 현재의 관영 언론의 소유 구조로 자리를 잡게 된 배경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위 총독부 등의 지분은 미군정이 시작될 때, 미군정 법령 제33호에 따라 미군정에 귀속됩니다. 당시 미군정이 넘겨받은 서울신문 지분은 48.8%였습니다(김서중, 2007). 이후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KBS가 90%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로 올라섰고, 김대중 정권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민영화, 독립화의 첫 발을 떼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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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와 서울신문 관계 : 호반건설이 인수할 것으로 전망되는 포스코 지분 19.4%도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서울신문이 왜 관영언론인가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기도 합니다. 김영삼정부 시절 YS의 4촌 처남(손명순씨의 4촌 동생) 손주환씨가 1995년 서울신문 사장에 부임합니다. 그 전에 공보처 장관을 짧게 역임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낙하산입니다. 그는 당시 스포츠서울의 확장을 위해 CTS 설비에 투자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돈이 없었죠. 당시 재정경제원에 400억원의 증자를 요청합니다.

“스포츠서울이 잘 나가고 있으나, 경쟁사인 일간스포츠 등은 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지면을 늘리고 특히 컬러 인쇄 비중을 높이고 있던 터에 피신청인 회사의 윤전기 성능이 경쟁회사에 미치지 못하여 윤전기의 교체가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본건 윤전기는 그 가격이 200억 내외이며…”(오연호, 1998)

하지만 재정경제원는 난색을 표합니다. 이때 수완을 발휘합니다. 당시 이원종 정부수석을 찾아가 포항제철 김만제 회장을 설득해달라고 한 거죠. 그렇게 200억 투자를 유치해왔다고 합니다. 나머지 200억은 재경원이 내는 것으로 합의를 합니다. 그렇게 포스코는 1995년 7월 서울신문의 대주주로 올라서게 됐습니다. 당시 서울신문과 권력의 유착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이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남아있던 지분을 이제 호반건설이 매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거죠. 정부투출자 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의 인수라는 점이 다릅니다. 민영화, 정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취지엔 어울리지만 그 대상이 또한번 건설업체(중흥건설의 헤럴드 인수)라는 점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계몽의 종언’ 시대에 국영신문 필요할까 : 서울신문의 민영화는 민주화 이후 수차례 시도된 전례를 갖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우리사주조합에 지분을 매각한 것도 그 연장이었죠. 국민계도라는 명분이 사라진 시대에, 그것도 다양한 정부 홍보 채널이 가동되고 있는 시점에 정부가 신문사를 직접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합니다. 서울신문 노조도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소유 구조 변화를 꾸준히 모색해왔습니다.

"95년을 전후 서울신문 노조원들은 정부로부터 소유권 독립을 계속 주장해왔다. 한국화약이 경향신문을 인수하던 95년에는 재벌에 의한 민영화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달라졌다. 새 정권이 민영화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정작 노조원들은 정부 소유 구조를 유지하는 속에서의 개혁을 선호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다분히 IMF 현상이 초래한 것이다."(오연호, 1998)

호반건설이 지분 일부를 인수하느냐 아니냐를 넘어서서 정부가 신문사를 직접 소유하는 형태가 지금 시점에 바람직한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 “서울신문을 없애겠다”고 발언할 정도로 서울신문의 친정부 논조는 극에 달했던 적이 있습니다(오연호, 1998, P.41). 정부가 언론을 통제했을 때 발행할 수 있는 수많은 폐해를 서울신문은 몸소 보여줬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서울신문의 지분 매각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서울신문은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서울신문 민영화 이슈는 잠잠했습니다. 보수정부는 서울신문을 이용하려고만 했고요.

매각 대상이 건설기업이냐 아니냐도 분명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정부가 언론을 직접 소유하는 모델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서도 논의를 다시금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KBS, EBS, YTN, 연합뉴스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직간접으로 인사권에 개입할 수 있는 언론사가 국내엔 과도하게 많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연호(현 오마이뉴스 대표)가 1998년 ‘월간 말‘ 3월호에 남긴 글로 마무리를 해볼까 합니다.

“정부는 서울신문과 이별해야 한다. 정부가 신문사를 소유하는 서방세계 유일의 추태를 중단해야 한다. 정부는 서울신문이 홀로 서게 하고 국민에게 흥망단죄의 칼을 건네야 한다. 서울신문이 그간 위의 다짐들을 잘 지켜왔다면 국민은 서울신문을 구독해 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아낌없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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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김서중. (2007). 1950년대 언론계의 동향-이승만 정부와 그 유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연구보고서, 2007(0), 412-449.
  • 오연호 (1998). 포철 2백억 서울신문 투자에 청와대 외압. 월간말, 38-43
  • 장용호, 김학수, 정상윤 (1994). 한국 언론기업의 소유구조 및 이사진 형성과 변동에 관한 연구. 성곡논총, 25(2), 63-157
  • 편집부 (1998). 개혁과 서울신문을 위한 긴급 제언. 인물과사상,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