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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은 여전히 유망하다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은 여전히 유망하다

찰리 와젤(Charlie Warzel)은 최근 뉴욕타임스를 떠나 서브스택에 둥지를 텄습니다. 버즈피드 뉴스 기자 출신인 그는 2019년부터 뉴욕타임스에서 오피니언 담당 작가로 글을 써왔습니다. 하지만 4월5일 뉴욕타임스의 마지막 오피니언 칼럼을 끝으로 뉴욕타임스를 떠났습니다. 흔한 표현으로 고연봉의 안정적인 직장을 떼려치우고 독립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의외였던 점은 서브스택의 선금 지급 프로그램으로 결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나름의 유명세를 탄 기자들은 서브스택의 선급 프로그램의 제안을 받고 넘어가는 경우가 최근 흔해졌는데요. 그는 이 프로그램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자신이 거절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미래에 확신이 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최근 서브스택으로부터 제안을 받는 기자들은 우리 돈으로 1~2억원 이상의 선금 지불 프로그램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유료 구독을 운영하는 첫해, 구독 수익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전하고 안정감을 심어주기 위해 서브스택은 이 프로그램을 공격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름값 높은 유명 작가나 저널리스트들을 영입할 때 매력적인 수단이 되고 있죠.

서브스택의 작가, 저널리스트 영입 경쟁은 미국 내 언론판을 조금씩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폴 크루그만 쟁탈전입니다. 뉴욕타임스에서 오랫동안 글을 써왔던 폴 크루그만은 2월4일 서브스택에 'Krugman Wonks out'을 개설하고 무료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월7일까지 한 달간 주기적으로 연재를 해갔습니다. 하지만 곧 제동이 걸리게 됩니다. 뉴욕타임스가 그를 다시 불러들인 것이죠. 쉽게 설명하면 '서브스택에 무료로? 우리가 비슷한 뉴스레터 툴을 만들어줄 테니 여기서 쓰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Why We’re Freaking Out About Substack
A company that makes it easy to charge for newsletters has captivated an anxious industry because it embodies larger forces and contradictions.

뉴욕타임스 입장에선 그들의 구독 전환을 높여줄 수 있는 유명한 필진이 외부에서 무료로 글을 공개한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그들 고유의 디지털 전환 엔진의 가치를 갉아먹는 흐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붙잡았고 그를 위한 공간을 급하게 마련해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류의 유명 작가/저널리스트 쟁탈전은 더 많은 경쟁자들이 이 생태계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격화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최근 기사를 보면, 서브스택에서 가장 큰 뉴스레터 중 하나였던 '더브라우저' 운영자 나단 탱커스가 서브스택을 떠나 Ghost로 향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서브스택처럼 수익 배분이 없고 플랫폼 사용료만 내면 되는 Ghost의 매력에 푹 빠진 결과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구독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을 듯합니다.

트위터에 페이스북까지 이 판에 뛰어들어 말그대로 전쟁터가 된다면, 유명 저널리스트들의 몸값은 더 뛰게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미 쟁쟁한 언론사 간판을 뒤로하고 서브스택에서 독립하는 기자들이 적잖은 상황이죠. 그 유명한 글렌 그린왈드도 이미 서브스택 파트너가 된 지 오래입니다.

블로그 시대, 개인들의 수익 규모

블로그 유행기였던 2000년대 초기. 작가, 저널리스트도 블로그 대열에 합류하며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나섰습니다. 특히 2003년 구글 애드센스의 등장(그 전에 Blogads도 존재)은 기폭제였죠. 블로거들이 자신들의 지식 기반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너도나도 구글 애드센스를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하며 아름다운 프리랜서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당시 We Want Media 블로그를 운영하던 패트릭 필립스는 한 콘퍼런스에서 나와서 상당한 트래픽을 얻고 있긴 하지만 정규 수입을 대체할 만한 충분한 수익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리고 구독과 같은 유료 방식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블로그 기반의 작가, 저널리스트들이 처한 처지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 기반 유료 구독에 낙관적인 인사도 있었습니다. 한때 제가 열렬히 구독했던 PaidContnet의 라팟 알리(Rafat Ali)같은 친구입니다. 그는 지금 마케팅 서비스인 Skift를 창업해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블로그 기반 유료 구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던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B2C는 어려울 수 있지만, B2B는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논의에도 블로그 생태계는 대부분 광고 수익 중심으로 빠르게 흡수돼 갔습니다. 닉 덴튼의 Gawker처럼 가십 중심으로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당시에 유행이 됐습니다. 허핑턴포스트, 보잉보잉 등 대부분이 광고 수익에 의존했습니다. 트래픽 몰이에 역점을 두면서 콘텐츠의 품질을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외줄타기를 계속해 왔죠.

하지만 결과를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SEO 등의 기법이 주류를 이루면서 저품질 포스트가 양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미국 기준으로는 2008년이 그 기점이었습니다. 저품질 블로그에 대한 구글 검색의 단속(순위 하락 기제)이 시작되면서 블로거들은 더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죠. 블로그의 암흑 시대가 시작되던 시기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트위터와 같은 마이크로 블로깅이 대세가 되던 때였습니다.

여튼, 광고 수익은 작가, 저널리스트들은 콘텐츠 품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충분한 수익을 보증해 주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제품 판매 링크 등과 같은 부가 수익모델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원해주는 여러 플랫폼들과 상품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네이버 오픈캐스트를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2008년 베타 테스트를 시작해 2016년 문을 닫은, 블로거를 위한 정보공유 공간이었습니다. 트래픽의 유입창구(aquisition channel)를 갈망하던 블로거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프로덕트였습니다. 뉴스와 동급에 가까운 위치에 트래픽 유입을 지원하면서 다음의 블로거뉴스와 함께 광고 기반 수익 창출의 매개 역할을 톡톡히 했었죠. 그럼에도 작가나 저널리스트들이 전업으로 활동하기엔 블로그 기반 수익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독립 저널리스트들의 ‘진짜 독립’ 돕는 구독 모델

콘텐츠의 품질에 집중하면서도 전업이 가능한 생태계는 디지털 유료 구독에서 힌트를 찾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사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브스택에서 다시금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앤드류 설리반은 한때 블로그 시대에도 이름값 높은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뉴 리퍼블릭 기자 출신으로 The Daily Dish라는 블로그를 운영했었죠. 2013년에는 The Dish라는 벤처를 창업하기도 했습니다.(데일리 비스트에서) 하지만 2015년을 끝으로 블로그 판에서 은퇴를 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긴 암흑기를 거쳐 서브스택에서 다시 ‘독립‘을 모색 중입니다.

앤드류 설리반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전문성과 경험, 강고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독립 저널리스트들이 다시 개인의 공간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대부분 쟁쟁한 커리어를 지닌 저널리스트들이거나 칼럼니스트들입니다. 과거 블로그 황금기를 겪어낸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광고 비즈니스의 폐해를 이해한 분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다시 서브스택과 같은 플랫폼에 올라타고 저널리스트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기성 언론사들을 떠나는 움직임을 부추기기까지 합니다. 자립 가능한 수익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겁니다. 모 언론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콘텐츠와 전문성을 무기로 자신만의 미디어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일 겁니다.

분명 과거 블로그 황금기 때와는 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이 상당히 변화했습니다. 독자들이 구독에 익숙해졌고, 고품질 콘텐츠에 대한 희소성과 필요도 높아졌습니다. 광고 수익 규모에 대한 불만족, 부가 비즈니스로 인한 신뢰 저하 등도 피로도를 증가시켰습니다. 실력 있는 작가, 저널리스트들의 ‘엑소더스’는 이러한 변화한 인프라 위에서 시동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제 실력을 키워가는 작가, 저널리스트들에게도 그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굳이 Passion Economy, Creator Economy를 들먹일 것까지도 없습니다.

독립의 조건을 갖춘 작가와 저널리스들은 지금 좋은 환경을 맞고 있습니다. ‘기레기‘라는 조롱섞인 멸칭들에 둘러싸여 자존감을 훼손당하고 능력을 저평가 받으면서, 직업적 사명감을 희생해야 했던 시대는 조금씩 저물고 있습니다. 인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공간 안에서 삶의 가치를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내다버려야 했던 시기와 결별해야 하는 압력도 커지고 있습니다. 온전하게 행복할 수 있는 글쓴이로서의 삶을 뒷받침해줄 도구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잠재력 높은 작가, 저널리스트들의 미래는 분명 더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자라는 직종은 더이상 미래가 없다라는 테제에 감히 ‘동의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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