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기자들에게, 여성 기자들에게 객관주의 저널리즘이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페이지에 퓰리처상 수상자인 웨슬리 로워리 [https://en.wikipedia.org/wiki/Wesley_Lowery]의
글이 실렸습니다. 제목도 의미심장합니다. ‘흑인
'뉴스는 역사의 초고' 기원과 사초주의 그리고 따옴표 저널리즘 정당화 논리
“뉴스는 역사의 초고(First Draft Of HIstory)”라는 격언은 저널리스트들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기자가 월급 받는 직업인이
아니라 한 명의
한국언론진흥재단 닮은 빅터 피카드의 저널리즘 공적 지원 모델
문득 궁금해서 빅터 피카드(Victor Pickard)
[https://www.asc.upenn.edu/people/faculty/victor-pickard-phd] 교수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이나
[번역] 2020년대 저널리즘 혁신
아래는 BBC 뉴스랩스의 블로그에 1월29일 게시된을 BBC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번역을 했습니다. 혹 BBC 쪽에서 삭제를 요청하게 된다면 그 즉시
About 저널리즘에서 For 저널리즘으로
디지털 시대, 뉴스 시장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저는 “저품질 뉴스 공급과잉, 고품질 뉴스 공급부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근저에는 정보
[번역] 정부의 저널리즘 자금지원, 선일까 악일까
아래는 CJR Galley의 최근 인터뷰
[https://galley.cjr.org/public/conversations/-LzIH0c50Lza0g3nOFh1?fbclid=IwAR0R7S0yq30zVBMooFC6IDdzdScz7d2HIND0JnVQugtovHXK50c2m-px6JQ]
를 무단 번역했습니다. 정부의 미디어 자금
불확정성과 Post-Truth
과학계의 불확정성과 저널리즘계의 탈진실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두 개념은 연결돼 있기에 닮을 수밖에 없다. 셔드슨의 ‘뉴스의 발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시피, 저널리즘은 1930년대 프로파간다의 혼란기를 거쳐 객관주의 윤리와 과학주의적 방법론를 내재화했다.
[뉴스의 사회학] 셔드슨이 말하는 저널리즘
#1부-저널리즘의-현주소1부 저널리즘의 현주소
04 뉴스의 시작과 발전: 미국 저널리즘의 역사
* 저널리스트들은 스스로를 과학의 권위, 효율성, 진보주의 개혁운동에 부합하는 집단으로 위치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을까
신화나 신념은 가끔 저널리스트들의 비판적 의심을 짓누르거나 은폐한다. 그 가운데 으뜸은 저널리즘이 당연히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하는 신념
체계다. 이미 적지
'기레기' 조어 기원을 찾아서
블로그에 등장한 시점
* 2011년 4월19일 : 블로그 – 기레기 ㅉㅉㅉ, 쓰레기자 ㅉㅉㅉ [https://halfelf.tistory.com/358]
* 2011년 11월11일 : 블로그 ‘사람 냄새